부안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자 정부는 2003년10월 무렵 중재기구인 '부안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공동협의회'를 꾸렸다. 하지만 공동협의회는 중재다운 중재 한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결국 완전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당시 공동협의회를 이끌었던 조영택(사진) 전 국무조정실 기획수석조정관(18대 국회의원)은 부안사태에 대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사업"이라고 잘라 말했다. 워낙 예민한 국책사업인 만큼 '공론화 후 유치신청'을 해야 했는데, 정반대로 '유치신청 후 공론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정부는 어떻게든 방폐장 건설을 관철하려 했고 반대측은 원천무효를 고수했다"며 "양측의 목적이 완전히 상반됐던 탓에 협의 자체가 진행이 안됐다"고 밝혔다.
국무총리실이 부안사태에 개입한 건 2003년9월, 김종규 군수에 대한 폭행이 일어날 정도로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점이었다. 이미 지자체에서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주무부처였던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실무자들과 반대측 대표들은 서로 얼굴 한번 제대로 맞대지 않고 있었다. 조 전 조정관은 "주무부처가 지자체에 대부분 업무를 일임해버려서 주민과 중앙정부간 직접소통은 아예 꿈도 꿀 수 없었다"고 말했다.
주민과 경찰간 유혈충돌까지 벌어지자 정부는 비로소 중재기구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그 해 10월16일 공동협의회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이미 사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후였다. 10월24일~11월14일 총 네 번의 공동협의회를 열었지만, 한 발짝의 진전도 없었다.
이해관계 보다는 근본적인 신뢰의 문제였다. 조 전 조정관은 "주민들에게 현금지원을 하겠다고 했다가 번복하고, 주민투표 실시를 놓고 부처마다가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등 중앙정부가 계속 일관성 없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이미 정부가 신뢰를 잃은 터라 어떤 지원책을 내놓아도 주민들을 설득하기 힘들었다"고 지적했다.
조 전 조정관은 우리사회 중재기구 역할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갈등중재기구 설립, 갈등중재인 양성, 관련자료 축적 등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앞으로 국책사업이 계속될 텐데 부안과 같은 비극을 막으려면 갈등관리 기본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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