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악기상가 거리에 자리잡은 한 카페. 1960년대 인기배우 오드리 햅번 사진이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70년대 포크록 음악인 사이먼 앤 가퍼클의 '침묵의 소리(Sound Of Silence)'가 흘러나온다. 132㎡(약 40평) 공간을 둘러싼 벽면은 '티파니에서 아침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오래 전 영화의 포스터로 장식돼 있고 구석 한 켠은 70년대 음악다방에서나 봄직한 LP판이 즐비한 뮤직박스가 차지하고 있다. 테이블에는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 카페의 메뉴는 '양은도시락+원두커피(생강차, 쌍화차 선택가능)'세트뿐이며 가격은 4,000원이다. 지난달 30일 하나은행에서 개장한 '추억더하기 카페'(사진)의 오후 풍경이다. 은퇴자들의 여가와 문화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었다. 김종준 은행장은 "하나은행이 100세 시대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기 위한 목적으로 개점했다"고 설명했다.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금융권에 은퇴를 대비하는 장년층과 고령층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고령화 시대가 본격화함에 따라 고령ㆍ은퇴자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우대금리뿐만 아니라 전용카페, 은퇴맞춤 관리 등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이 은퇴자 전용 카페를 개설한 것도 실버세대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60세 이상 고령층 예금은 전체 예금의 34.8%(257조ㆍ6월말 현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세대의 인구비중이 17%인 점을 감안하면 금융자산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다. 하나 측은 지난해 은행 최초로 은퇴설계 브랜드인 '행복디자인'을 출시하고 은퇴 연령별 자산설계를 비롯 상속 재테크 등의 상담서비스와 '행복연금통장'같은 은퇴전용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KB국민은행 우리은행 등도 전담조직을 신설해 은퇴를 앞둔 일반 고객들에게 맞춤형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은퇴하는 중산층이 당장 은행에 큰 수익을 주지는 않겠지만 장기간으로 보면 은행거래를 꾸준하게 할 연령층이기 때문에 중요한 고객"이라고 말했다.
고령층의 필요를 충족시키려는 금융상품도 늘고 있다. NH농협은행이 지난달 출시한 '내생애 아름다운 정기 예ㆍ적금'이 대표적이다. 은퇴준비를 시작하는 만 45세 이상 가입자에게 주는 우대금리(0.1%포인트)뿐만 아니라 ▦결혼, 출산 등 경조사로 긴급 자금 필요 시 중도 해지하더라도 기본금리 적용 ▦가입 고객 사망 시 최고 600만원 장례준비금 지급 등의 맞춤형 부가 서비스를 제공해 출시 이후 8영업일 만에 1만좌, 1,000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7월 출시한 우리은행의 '우리평생파트너통장'은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는 급여통장으로, 퇴직 후에는 연금통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 출시 두달여 만에 10만좌가 넘게 개설됐다. 신한은행의 '신한 평생플러스 통장'은 보이스피싱으로 연금을 사기 당하더라도 금전손실액을 최고 300만원까지 보상받도록 했다. 전국은행연합회 관계자는 "고령화 사회 진입으로 은퇴자 등 시니어층의 자산을 관리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장이 금융권의 주요 시장으로 떠올랐다"며 "어느 은행이 고령층의 요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응하느냐가 시장을 선점하는 데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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