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Higgs)'는 지난해 7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존재를 밝혀내기 전까지 입자물리학자들에게 '계륵(鷄肋)'같은 존재였다. 현대 입자물리학이 완성되려면 꼭 있어야 하지만 도무지 나타나지 않아 물리학자들의 속을 태웠다. 만약 힉스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입자물리학의 근간인 '표준모형'을 대체할 다른 이론을 다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힉스가 공식 발견되자 전 세계 물리학계가 힉스 존재를 처음 예견한 두 물리학자들의 노벨상 수상을 일찌감치 점쳤다.
힉스 존재를 예견한 첫 연구논문은 1964년 프랑수아 앙글레르 브뤼셀자유대 명예교수가 발표했다. 특정 미지의 입자(힉스)가 존재해야만 세상을 구성하는 입자들에 질량이 생길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직후 피터 힉스 에든버러대 명예교수가 그 과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제시한 논문을 내놓았다. 뒤이어 3명의 과학자가 이 미지의 입자 존재를 확인하는 논문을 잇따라 발표했지만 앙글레르ㆍ힉스 교수보다 늦어 노벨상을 함께 받지 못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미지의 입자를 힉스라고 부르게 된 건 한국 물리학자 고 이휘소 박사 덕분이다. 1967년 이 박사와 힉스 교수가 만나 미지의 입자에 대해 대화한 뒤 이 박사가 1972년 미국에서 열린 한 국제학회에서 힉스 교수의 이론을 언급하며 힉스 입자라는 말을 처음 썼고, 힉스 용어가 통용되기 시작했다.
CERN은 양성자와 양성자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해 충돌시켰을 때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만들어지는 새로운 입자를 검출기로 확인하는 방식으로 힉스를 찾아냈다. 현재 CERN이 찾은 입자가 진짜 힉스일 확률은 99.9999%로 알려졌다. 덕분에 세상의 모든 입자와 물질이 지금 같은 상태가 됐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현대 물리학 연구가 끝났다는 의미는 아니다. 고병원 고등과학원 물리학부 교수는 "힉스를 바탕으로 하는 표준모형은 우주의 5%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현대물리학의 '기본'이 갖춰졌을 뿐 본격 연구는 이제 시작이라는 얘기다.
CERN이 힉스 입자를 발견하기까지 사실 우리나라도 적잖은 기여를 했다. CERN의 국제공동연구에 70여 명의 한인 과학자가 참여한 것. 이들은 여러 소립자 중 하나인 '탑 쿼크'의 특성을 연구했다. 탑 쿼크는 힉스와 가장 비슷한 입자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CERN이 찾아낸 입자가 진짜 힉스인지 탑 쿼크인지 구분하려면 탑 쿼크 연구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힉스 발견 당시 CERN의 한국팀 책임자였던 박인규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는 "이번엔 다른 나라 잔칫상에 낀 정도지만, 2018년 우리 기술로 만든 장비(뮤온 검출기)로 CERN에 합류하면 힉스를 비롯한 입자물리학 연구에 한국이 좀더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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