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이 23년 만에 국경일의 격을 되찾았지만 우리말의 질적 창달을 위한 시책은 여전히 왜소하다. 한글의 조탁과 진화를 이끄는 시와 소설, 수필과 희곡 같은 문학 창작지원 얘기다. 박근혜 정부가 '문화융성'을 핵심 국정기조로 내세우면서 내년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안)은 올해보다 5.7% 증가한 4조3,384억원으로 책정됐다. 보건ㆍ복지ㆍ고용 분야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증가율이다. 하지만 쥐꼬리 만한 문학 창작지원 예산은 거의 늘지 않았다.
문화융성 기조에 따른 예산 증액분은 주로 돈벌이가 되는 문화산업 쪽에 배분됐다. 관광 숙박시설 확충을 위한 융자사업비가 올해의 두 배에 가까운 5,250억원으로 잡혔고, 영화ㆍ게임ㆍ음악 등 5개 '킬러콘텐츠' 관련 지원예산 증액분만 600억원을 넘는다. 반면 시ㆍ소설 등의 창작, 문예지 발간, 문학 집필공간 운영 등 5개 분야에 걸친 문학창작 지원예산은 지난해와 거의 비슷한 수준인 25억원 남짓이 전부다. 지원이 절실한 문학창작 부문이 예산 배분에서 소외되는 '빈익빈' 현상이 고질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사실 재원조달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 해당 예산은 일반회계가 아니라, 내년도 예산안에서 1,800억원 규모로 책정된 문화예술진흥기금에서 전액 끌어다 쓰게 돼있다. 하지만 영화나 공연 입장료에 함께 부과됐던 문예진흥기금이 지난 2004년부터 없어지면서 문예기금 적립금 자체가 해마다 줄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문학창작 지원예산도 줄면 줄었지 늘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물론 내년부터 예술인 복지나 도서관 장서 구비 예산이 증액돼 문인들도 간접적인 혜택을 입게 됐다. 하지만 일부 인상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월ㆍ계간 문학지의 고료는 시 한 편에 7만~10만원, 단편소설은 200자 원고지 한 장당 1만원으로 1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토머스 칼라일은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말로 영어 발전에 기여한 대문호의 공을 기렸지만, 우리의 대다수 시인ㆍ작가들은 여전히 남루하다. 우리말 창달을 위해서라도 문학 창작 지원책이 새롭게 검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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