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극의 등장인물은 아버지 혹은 아버지의 부재로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극단 풍경이 20일까지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하는 '아버지의 집'(연출 박정희)은 집을 허물고 짓는 과정을 통해 가족의 해체, 그리고 결합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으로 지난해 제2회 벽산희곡상을 받은 김윤희 작가의 짧지만 묘사가 뛰어난 대사, 그리고 집을 매개로 다양한 연극적 기호와 상징을 보여주는 장치들이 탄탄하게 극을 끌고 간다.
무대는 아버지(김학선)와 배 다른 딸로 추정되는 아버지의 제자 주영(김정은)이 철거를 앞둔 집 마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오래 전 아버지가 설계해 지은 집은 어머니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기까지 가족의 보금자리였다.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 가족은 집을 떠났고, 결국 큰딸(조선주)이 원한 대로 헐리고 새 집이 지어질 예정이다. 주영은 죽은 어머니의 현신처럼 아프게 가족 곁을 맴돌며 곧 헐릴 집에 끝끝내 머물려 한다. 큰딸과의 갈등을 뒤로한 채 죽은 어머니의 방에 들어가 그녀처럼 손목에 생채기를 내고서야 아버지의 가족 앞에 바로 서는 주영. 이들은 새 집이 지붕을 얹고 모양을 갖춰가면서 가족성을 되찾는다. 집을 나갔던 작은딸(임성미)도 완성된 집으로 돌아온다.
작품은 단순히 아버지 가족에만 포커스를 두지 않는다. 허물어지고 다시 모습을 찾는 집 주변에는 아버지를 찾아 한국으로 건너온 큰딸의 재일동포 친구 케이타(김승철)의 이야기가 맴돈다. 병상에 누운 자식을 걱정하는 건축소장(박지환)은 애정은 넘치지만 가족에게 쉽게 품을 내주지 못하는 평범한 아버지들을 상징한다. 입을 다문 채 묵묵히 일하면서 죽은 꽃을 물에 담그고 집에 대문을 달아주는 등 슬그머니 생명을 완성하는 역할을 하는 일꾼(신철진)은 평생 군소리 없이 헌신하는 아버지들을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의 부재, 가족 구성원의 마찰은 극 곳곳에서 여러 상징을 통해 그려진다. 주영의 마비되어 가는 오른손, 집 대문에 항상 돌을 던지는 열아홉 살 소년(김민하), 그리고 그 돌을 맞아 우그러진 철 대문, 아무리 망치로 두들겨도 펴지지 않고 삐걱대는 대문. 집은 완성되고 가족과 그 주변인들은 새 집의 이층 창을 통해 관객을 내려다본다. 주영의 손은 나아졌는지, 돌을 던지던 녀석은 더 이상 돌을 던지지 않을지 알 수 없다. 가족의 상처는 그렇게 눈치채지 못하게 치유되지만 가끔 남모르게 덧난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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