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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무엇인지, 왜 사는지 생각하게 만들어야 좋은 연극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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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무엇인지, 왜 사는지 생각하게 만들어야 좋은 연극이죠"

입력
2013.10.0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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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연출가의 등은 꼿꼿했다. 인터뷰를 위해 객석으로 향하던 그는 공연 준비를 하는 조명팀을 향해 깨알 같은 주문을 쏟아냈다. 무대까지 거리가 꽤 되건만 목소리 한 번 높이지 않고 그의 지시는 정확히 스태프들에 도달했다. 일본 연극계의 거장 스즈키 다다시(74)의 카리스마는 이미 극장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는 혹독한 배우 훈련법으로 명성이 높은 '스즈키 메소드'를 정립하고 현대 실험극의 트렌드를 끌어온 연출가다. 문명과 동떨어진 도야마 현 도가 마을에 극단을 끌고 들어와 '도가 연극 페스티벌'을 창시한 주역이기도 하다. 그의 극단 도가 스즈키 컴퍼니가 아르코예술극장에 올리는 '리어왕'공연을 하루 앞둔 7일, 리허설이 한창인 극장에서 그를 만났다. 이번 작품은 1994년 베세토연극제에서 선보였던 것을 새롭게 각색한 것으로, 2008년 '엘렉트라' 이후 그가 내놓는 두 번째 한일 합작극이다.

그에게는 19년 전 '리어왕'초연 때부터 줄곧 버리지 않는 캐치프레이즈가 있다. "세상은 정신병원이다. 어딜 둘러봐도 환자뿐이고 의사라 간호사라 자칭하는 사람들도 결국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에 불과하다. 내 배우는 주로 환자, 혹은 의료진의 모습으로 무대에 오른다. 병든 세상에 연극이 희망을 주거나, 혹은 희망을 찾도록 관객을 이끌자는 게 내 생각이다."

이번 '리어왕'도 "자신을 신이라 부르는 리더, 또는 그렇게 생각하는 정치인이야말로 치료받아야 할 병자라는 게 내 연극의 주요한 메시지"라는 그의 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원작의 틀은 그대로 가져왔지만 리어왕이 머무는 성은 정신병원이고 왕은 가족과 연이 끊어져 고독한 운명을 마주한 노인이다. 셋째 딸 코델리아의 에피소드는 삭제되고 극의 종말에 그녀의 시체가 등장해 비극의 수위를 원작보다 강하게 전달한다.

그의 또 다른 실험 중 하나는 일본인 배우에 국한하지 않고 여러 나라 배우를 자신의 작품에 출연시키는 것이다. 이들은 각각 자국어로 대사를 전달한다. 5년 전 '엘렉트라'는16명 배우가 모두 한국인이었다. 이번 작품에는 4명의 한국 배우가 출연해 한국어로 연기(총 분량의 30%)한다. "세계적인 교향악단을 보더라도 여러 나라 연주자가 함께한다. 연극이라고 다를 게 없다. '리어왕'이야말로 다국적 배우가 함께 연기하기 좋은 작품이다. 내년엔 베이징에서 중국 배우들과 공연할 계획이다."

서양의 대학 강의실에도 자주 등장하는 그의 '스즈키 메소드'는 배우의 발성과 감정 표현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한다. "스포츠 선수들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야 세계 대회에 출전할 수 있지 않나. 연극 배우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100m 10초 주파'와 같은 선을 그어놓고 여기에 도달하도록 만든 후 무대에 올리는 것이다. 우리는 배우의 잘한 점을 독려하지 않는다. 그의 성량이 내가 원하는 수준에 못 미치면 가혹하게 다그쳐서 끌어올린다. 완성하는 데 5년은 걸린다. 배우들이 한국 군대보다 무섭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가혹한 배우 훈련 방법만큼 묵직해서 대중적으로 '재미난' 연극은 아닐 수 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연극이 무엇인지 물었다.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 살면서 왜 사는지, 과연 삶은 무엇인지 작품을 본 후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관객과 예술인이 막후에도 정신적으로 교감하는 연극이어야 한다.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좋지만 예술적 레벨이 부족하다면 좋은 연극이 아니다. 결론을 내리지 않고 관객이 생각을 이어가게 해야 한다." 노 연출가는 다시 등을 세우고 무대로 향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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