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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식 건물 '교류 욕구' 반영 못해… 아시아적 새 건축양식 찾아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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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식 건물 '교류 욕구' 반영 못해… 아시아적 새 건축양식 찾아내야

입력
2013.10.0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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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다이 미디어테크 설계 때 공공성 각성벽 없는 도서관이 노인들 옷차림 바꿔대지진 이후 건축에 대해 다시 고민가설주택들 이재민들 교류 욕구엔 눈감아서구식 건물은 기술로 자연 통제에 초점자연-인간, 인간-인간 벽 허무는 건축 지향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은 모든 것을 쓸어갔다. 주택과 도로, 논밭으로 채워졌던 공간이 황무지가 되면서 일본 건축가들의 머릿속도 '제로' 상태로 돌아갔다. 바람직한 건축에 대한 기존 상식이 모두 휩쓸려간 자리에 다시 '좋은 건축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돋아났다.

일본 건축계의 거장 이토 도요, 구마 겐코, 세지마 가즈요 등은 피해 지역을 돌며 지금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귀 기울였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모두의 집'이라는 공동 쉼터다. 쓰나미에 쓸려간 삼나무 19그루로 만든 이 건물로, 이토 도요는 올해 3월 건축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이토 도요가 8일 헤럴드 디자인 위크 강연 차 방한했다. 72세의 나이에도 대만 오페라하우스 등을 설계하며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그는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20세기 동양에 유입된 서양 건축 양식이 지금 아시아 지역 사람들의 사회적 필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일본과 한국의 건축가들이 20세기 아시아 지역 사회가 필요로 하는 건축 양식을 찾아내 이를 세계로 발신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년 전에는 나도 모더니즘을 추구하는 건축가였다. 건축물은 오로지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마땅하다고 여겼는데 2001년 센다이 미디어 테크를 설계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센다이 미디어 테크는 도서관, 영화관, 카페가 모인 복합 문화 공간인데 당시 내가 공모전에 냈던 디자인이 공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지역 신문들로부터 맹비난을 받았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한데 어울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벽이 없는 건물을 디자인했다. 사람들은 벽 대신 세워진 13개의 크고 작은 기둥 사이로 물이 흐르듯 이동하며 섞인다. 이곳 도서관에는 어린이 열람실이 따로 없고 아이와 노인이 모두 같은 공간에서 책을 본다. 개관 1, 2년 후 가보니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의 옷차림이 경쾌하게 바뀌어 있더라. 건축가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통감했다. 동일본 대지진 때 만든 모두의 집도 이런 생각 위에서 이루어졌다."

-대지진은 당신의 건축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지진이 난 후 토목 관계자들은 사흘 만에 정부에 불려갔다. 원래 국가와 관계가 깊고 조직도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축가들은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TV에서 처참한 광경을 보면서 건축가들은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결국 동료 건축가들과 함께 직접 피해 지역을 방문하기로 했다. 이미 정부가 이재민들을 위해 가설 주택을 지어 놓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교류였다. 판에 박은 듯한 가설 주택에 가만히 앉아 있기보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끼리 모여 같이 밥이라도 먹으면서 얘기 나누길 원하고 있었다. 서구식 건물이 지금 우리 사회의 필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서양 건축 양식의 문제는 무엇인가

"20세기 건축은 기술을 이용해 자연을 통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간은 두꺼운 벽으로 소음과 추위를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결과적으로 더울 때나 추울 때나 늘 쾌적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게 됐지만 그렇게 해서 정말 행복해졌는지 묻고 싶다. 전세계 대도시의 건물이 균일해지면서 지역 고유성이 사라졌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원래 갖고 있던 동물적 감수성을 잃게 된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건물 외부에서 느끼는 감각을 내부에서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설계 중인 기후 시의 미디어 코스모스는 바깥과 통해 있다. 2층 천장에 전등갓 모양의 장치를 달았는데 여기로 외부의 열과 공기가 통과한다. 요즘 에너지 절감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데 꽉 막힌 사무실에서 무조건 참는 것보다 건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자연과 인간의 경계, 인간과 인간의 경계를 허무는 이 같은 작업은 앞으로 내가 지을 건축물의 방향성이 될 것이다."

-더위를 견디거나 교류를 늘리는 것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 같다. 더 좋은 사회를 위해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맞다고 보나

"예전엔 한국도 일본도 모두 열린 형태의 건축물에서 살았다. 추우면 툇마루에서 볕을 쬐고 더우면 북측 방에서 땀을 식혔다. 그리고 좀 덥거나 춥더라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 관대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강요할 수는 없다. 지금 일본 정부가 주도하는 대지진 지역 복구 계획은 근대 건축 양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데, 이렇게 돼선 안 홱鳴?생각한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과거 건축 양식과 현대 사회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새로운 양식을 창안해야 한다. 3년 전부터 젊은 건축가나 초등학생들과 건축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갖고 있는데 이중에 한 명이라도 이런 과업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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