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말 드러나 검찰 수사로 이어진 원전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사태는 부품 공급업체와 검증기관 간 '검은 거래'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최근 정부 조사결과, 최신형 원전에 설치된 일부 안전성 기기의 경우 공급업체가 검증역할도 수행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자신이 만든 부품의 안전성 여부를 자신이 검증해 손쉽게 통과시킨, 이른바 '셀프 검증'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김제남 정의당 의원이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신고리원전 1~4호기와 신월성원전 1ㆍ2호기의 기기검증(EQ) 품목 100개 중 41개의 공급업체와 검증기관이 똑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고리 1ㆍ2호기는 39건 중 18건, 신고리 3ㆍ4호기는 36건 중 17건, 신월성 1ㆍ2호기는 25건 중 6건이 이에 해당됐다.
특히 셀프 검증 업체들에는 시험성적서 위조로 검찰 수사대상이 된 기업들도 일부 있으며, 대기업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기기검증서를 위조한 사실까지 적발돼 한수원으로부터 공급자 자격을 박탈당한 업체도 있었다.
내진검증과 내환경검증으로 이뤄지는 EQ는 원전 안전성과 직결되는 기기에 대해 자연재해나 사고 시에도 제대로 작동하는지 여부를 따져보는 과정이다. EQ가 정상적으로 수행되지 않으면 그만큼 원전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어진다는 얘기여서, 이번에 드러난 셀프 검증 행위는 원전 안전을 둘러싼 새로운 논란을 불러올 전망이다.
이 같은 셀프 검증은 1999~2010년 원전기기 검증의 규제가 허술해진 틈을 타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1995년 정부는 공신력을 갖춘 검증업체에만 사업권을 주는 '성능검증업 허가제'를 도입했다가 규제완화를 이유로 1999년 이를 폐지했다. 기기공급자가 자율적으로 검증기관을 선정토록 한 것이지만 공급자-검증기관 간 결탁 가능성이 문제가 되면서 2010년 다시 이 제도가 도입됐다.
김제남 의원은 "신고리 1~4호기, 신월성 1,2호기는 JS전선의 위조케이블로 인해 교체 및 가동시기에 대해 논란이 많은 만큼 자칫 겨울철 전력난을 핑계로, 또는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넘어가선 절대로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현재 진행 중인 EQ 특별실태점검을 마치는 대로 조사결과를 발표할 계획이어서, 이들 원전의 재가동 또는 상업운전 시점이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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