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기업 논리를 대변해 불수용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고용부가 지난 5년간 총 10건의 인권위 권고 중 단 1건만 전면 수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4건은 불수용, 4건은 일부 수용(1건은 검토 중)했다.
7일 인권위에 따르면 인권위가 2009년부터 고용부에 내린 노동법 및 노동 정책 관련 권고 10건 중 고용부가 수용한 것은 '공격적 직장폐쇄 관련 정책 권고'(2012년) 1건에 불과했다. 사업주에 대한 행정지도와 근로감독을 강화하라는, 받아들이기 쉬운 권고였다.
하지만 첨예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초래한 문제였던 '사내하도급 근로자 인권개선 권고'(2009년) '외국인 산업연수생 퇴직금 관련 노동부 방침에 대한 권고'(2009년) '노조법 및 관련 정책 개선 권고'(2010년) '정리해고자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 권고'(2013년) 4건은 불수용했다.
이 문제들은 지금까지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곪아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최근 신세계 이마트, 삼성전자 서비스, 티브로드 등 유통업 서비스업까지 광범위하게 번지고 있는 불법파견(사내하도급) 문제다. 2009년 인권위가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라도 근로조건 등의 결정에 실질적 영향력이 있는 자(원청업체 사용자)까지 사용자 범위 확대, 상시 업무에 대한 직접고용 원칙 명문화 등을 권고했지만 고용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달 고용부가 전국교직원노조의 설립 취소 수순에 돌입한 근거였던 해직자 가입 관련 법규도 인권위가 판례와 국제노동기구(ILO) 등의 기준에 맞춰 삭제를 권고했던 조항이다. 또 피해 노동자에게 업무와 질병 발병의 인과관계를 모두 입증하도록 하는 현재 제도도 기업 및 정부가 함께 입증하도록 개선할 것을 권고했지만 고용부가 이를 거부, 많은 노동자들이 산재 인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근로기준법 상 정리해고 요건 강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을 정도로 사회적 합의가 형성돼 있음에도 고용부는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권위의 정책 권고는 어느 한 쪽의 인권이 현저하게 침해되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이해 당사자의 의견 및 법원 판례, 국제 기준 등을 폭넓게 검토한 후 해당 부처에 내리는 결정이다. 2009년 현병철 인권위원장 취임 후 인권위의 정책 권고가 과거에 비해 상당히 보수화됐다는 비판이 일고 있지만 고용부는 이마저도 따르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고용부는 거부 사유로 기업 입장을 그대로 내세우고 있다. 정리해고 요건 강화는 "경기 불황 시 기업 회생 수단이 제한된다"며, 산재 입증 책임 배분은 "무분별한 보상 및 과도한 재정 지출이 우려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권위 관계자는 "약자인 노동자를 대변하지 않는 고용부가 정말 답답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고용부가 일부 수용한 4건은 '청소년 노동인권 개선 법령 및 정책 권고'(2010년) '고용허가제 개선 방안'(2011년) '산재보험 제도 개선 권고'(2012년) '방송영장 제작스태프 노동인권 개선 권고'(2012년) 등이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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