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오바마 행정부 2기 출범 직후 미국 보수단체 30여곳의 대표들이 워싱턴 모처에 집결했다. 로널드 레이건 정권의 실세였던 에드윈 미즈 전 법무장관이 기획한 이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오바마케어 폐지 계획’을 공동 채택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최대 역점사업인 건강보험 개혁을 막으려면 연방정부 예산 삭감이라는 강경책을 써야 한다는 제안이었다. 정부 폐쇄(셧다운)로 귀결된 여야의 예산안 전쟁의 밑그림이 이처럼 일찍이 민간 보수세력에 의해 그려졌다고 뉴욕타임스(NYT)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달 중순부터 본격화된 예산안 협상 전후로 미국 보수진영은 오바마케어 폐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의 정치조직인 헤리티지액션은 8월 9개 도시를 순회하며 오바마케어 폐지 집회를 가졌다. 공화당 스타 정치가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과 짐 드민트 헤리티지재단 이사장이 연사로 나선 댈러스에 1,000여명이 모이는 등 행사는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드민트가 설립한 상원보수기금은 최근 반(反)오바마케어 웹사이트를 개설했고 공화당 의원들이 출연한 TV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이 단체는 오바마케어 반대에 미온적인 공화당 의원 3명을 비난하는 라디오 광고도 했다. ‘보수 50 플러스 동맹’은 7만명에게 오바마케어 폐지 청원 서명을 받아 상원에 전달했다. 이들 민간 단체의 여론전은 티파티 등 공화당 보수파 의원들의 강경 행보에 힘을 싣고 있다.
티파티를 후원하는 석유재벌 찰스 코흐와 데이비드 코흐 형제는 이들 보수단체의 돈줄이다. 코흐 형제가 관여하는 프리덤파트너스는 지난해에만 반오바마케어 단체에 2억달러(2,144억원) 이상 후원했다. 덕분에 오바마케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한 2010년 이후 보수단체가 대거 신설됐다고 NYT는 지적했다. 미국의 상징인 엉클 샘이 산부인과를 찾은 여성을 음흉하게 바라보는 인터넷광고로 논란을 일으킨 ‘세대 기회’, 대학을 돌며 건강보험카드를 소각하는 자극적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프리덤 워크’도 신흥단체다.
보수단체들은 단순한 여론전을 넘어 공화당의 의회 전략에 적극 간여하고 있다. 티파티 계열의 대표단체 ‘티파티 패트리어트’는 예산안 협상이 본격화하기 전인 지난달 초 오바마케어 반대 논리와 여론전 수행 방법을 담은 문건을 배포했는데 여기엔 셧다운에 따른 비난에 대응하는 논리가 제시됐다. 이미 셧다운을 협상카드로 여겼다는 증거다. 오바마케어 예산 전액 삭감을 주장하던 공화당이 양보안으로 내놓은 오바마케어 시행 1년 연기도 민간단체의 아이디어다.
NYT는 “3년 전 오바마케어 법안이 통과된 직후부터 보수 진영은 연방예산안 처리와 결부한 오바마케어 폐지를 염두에 뒀다”고 전했다. 물론 보수진영은 처음부터 이 카드를 쓰진 않았다. 공화당은 하원 다수당 지위를 활용해 오바마케어 혜택 범위를 축소하는 한편 위헌소송을 제기해 완벽한 승리를 노렸지만 지난해 대법원의 합헌 판결로 타격을 입었다. 위기감을 느낀 보수단체들은 올해 3월의 임시예산안 만료를 노려 예산안 연계 협상을 제안했고 미즈가 소집한 워싱턴 모임도 그 일환이었다. 이 제안은 그러나 여야가 시퀘스터(연방정부 예산 자동삭감)에 집중하느라 예산 공백을 6개월짜리 임시예산안으로 미봉하면서 무산됐다. 뒤늦게 셧다운 카드를 쓰게 된 보수 진영은 절박한 표정이다. 미즈는 “이달 건강보험 의무가입 사업 개시로 오바마케어가 사실상 시작됐다”며 “지금이 아니면 2016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승리해도 오바마케어를 되돌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