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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5°/10월 8일] 정치9단 만델라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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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5°/10월 8일] 정치9단 만델라의 리더십

입력
2013.10.0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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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절대 성인(聖人)이 아니다"라는 자기규정대로 넬슨 만델라는 영리하고 수완 좋은 정치인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정권에 맞서 무장투쟁을 획책한, 평생 동지 올리버 탐보에 따르면 "열정적이고 예민하고 모욕과 은혜에 쉽게 반응하고 반드시 갚아주는 사람"이던 젊은 날의 만델라는 27년의 수감생활 동안 강한 자제력과 낙관적 태도로 무장됐다. 그가 마침내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강온과 완급, 정공과 변칙을 능란히 구사하는 '정치 달인'을 목도했고, 이는 불굴의 흑인해방 영웅으로 각인된 그의 이미지와 종종 어긋났다.

만델라의 유연함은 1985년 수인 신분으로 백인 정권의 비밀협상 제안을 수용, 사실상 정계에 복귀할 때부터 발휘됐다. 당시 백인 정권은 유색 인종의 거센 저항과 국제사회의 제재로 사면초가였다. 그럼에도 대정부 협상 수용은 만델라 자신의 무장투쟁 방침은 물론, 인종차별법 폐지와 정치범 석방을 협상조건으로 내세운 소속 정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원칙을 뒤집는 결정이었다. 잠비아에서 ANC 망명본부를 이끌던 탐보조차 친구의 배신을 의심했지만, 만델라는 원칙에 얽매여 협상 주도권을 틀어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1990년 석방 이후 본격화된 대정부 협상 과정에서 만델라는 노련하게 민주헌법 제정, 선거일정 마련 등 의제를 주도했다. 백인 정권은 치안부재 상황을 조장해 ANC와 줄루족 무장정파 인카타의 흑흑갈등을 유발하는 등 신의를 저버리곤 했지만 만델라는 강한 인내심으로 협상의 끈을 유지했다. 백인 극우 폭력조직의 발흥, ANC 소장파의 무장투쟁 주장으로 인한 위기 국면은 크리스 하니 등 소장파 지도자들을 아들처럼 끌어안고 돌파했다.

48년 간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 통치, 나아가 340여년 간의 남아프리카 백인 지배를 마감한 1994년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된 뒤 만델라의 포용 정책은 더욱 확장됐다. 남의 험담을 절대 하지 않는 그가 이례적으로 이기적이라 비난했던 두 정적, W F 데 클레르크 전 대통령과 줄루족 지도자 망고수투 부텔레지는 각각 부통령과 내무장관으로 입각했다. 온갖 반대와 불이익을 감수하며 ANC와 공산당의 동맹을 옹호해온 그였지만, 백인 기업가들의 해외 이탈이 우려되자 국영화 정책을 과감히 포기했다.

화합 행보의 정점은 1995년 출범한 진실화해위원회였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 치하에서 벌어진 온갖 범죄를, 만델라 정부는 가해자의 고백만으로 사면해주는 결단을 내리고 흔들림없이 시행했다. 대부분 백인 소행이었던 잔혹 행위들을 단죄하지 않겠다는 남아공 첫 민주정부의 결정은 흑인들의 격한 항의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피해 조사도 없이 프랑코 독재시절의 범죄에 법적ㆍ정치적 면죄부를 준 망각 협정 체결로 뒤늦게 갈등을 겪고 있는 오늘날 스페인과 같은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중요한 고비마다 논란에 휩싸였던 만델라의 리더십이 결국 남아공을 야만의 시대에서 구원하며 궁극의 목표를 성취해낸 것은 만델라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원칙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바로 민주주의와 국가통합이었다. 인종 간 내전이 우려되던 일촉즉발 상황에서 국가 기반을 유지하고 인종에 관계없는 투표권 행사, 다수지배 원칙을 정착시킨다는 대원칙을 위해서라면 그가 선택하지 못할 정치행위는 없었다. 상황이 요구한다면 폭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만델라는 마키아벨리스트이되 정치의 숭고한 책무를 아는 마키아벨리스트였고, 그가 존경했던 링컨이 그렇듯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후배 정치인들의 귀감이 됐다.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 기초연금 공약 파기 논란으로 집권 8개월 만에 중대 시련을 맞은 박근혜 정부도 만델라 정치에서 출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정부가 나아가려는 방향이 5년 단임 정부의 이해관계를 넘어 민주주의와 통합이라는 지고의 가치와 닿아있다는 믿음을 준다면 말이다. 정권교체를 앞두고 들뜬 흑인 유권자들에게 "선거를 치른 다음날 벤츠를 몰고 다닐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말라"고 솔직히 말할 줄 알았던 만델라의 용기까지 배운다면 금상첨화겠다.

이훈성 국제부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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