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송전탑 공사가 재개된 경남 밀양시를 찾았다. 오전 9시쯤 도착한 곳은 단장면 바드리마을 공사장 입구. 50대 아주머니부터 70대 할머니까지 여성 주민 9명이 목과 가슴에 쇠사슬을 이어 건 채, 스티로폼이 깔린 찬 바닥에 누워있었다. 이들 주위는 경찰이 에워쌌다. 주민들은 공사를 막기 위해 쳐 놓은 움막이 철거될까 잠을 못자고 새벽에 급히 올라왔다고 했다. 쇠사슬도 스스로 맸다고 했다. 주민 곁에는 반핵대책위 활동가 대여섯 명이 서성거렸다. 이들은 "목 안 마르세요? 아픈 곳은 없으세요?" 등 안부를 물었지만 어떤 지시를 내리거나 행동을 유도하지 않았다. 한 주민은 가슴을 쥐어 잡으며 계속 기침을 했고, 몇몇은 허리가 아픈지 자세를 계속 고쳐 누우면서도 쇠사슬을 풀거나 자리를 뜨지 않았다.
오전 11시쯤 단장면 미촌리 409 현장사무소 앞으로 달려갔다. 움막 철거 행정대집행이 시작돼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다. 아수라장이었다. 주민과 팔짱을 낀 통합진보당 당원, 환경단체 회원 등은 자신들을 해산시키려는 경찰에 맞서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다. 잠시 실랑이가 멈추자 60대 가량의 한 주민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죄인이가, 죄 없는 우리한테 와 이러노, 나라가 가엾은 국민한테 이래도 되나!" 다른 한 주민은 눈물을 훔쳤고, 옆에 섰던 통합진보당의 젊은 당원이 그의 눈물을 닦아줬다.
밀양 사태를 보도하며 주민들 뜻에 동조해 모인 시민들을 '외부 세력'으로 몰아세우는 언론이 많다. 이들은 분명 외지인이다. 하지만 이들이 갈등을 부추긴다고 말하는 건 왜곡된 시선이다. 밀양은 이미 8년 전부터 주민 반대가 극심했다. 목숨까지 내 놓겠다는 주민들의 고성은 빈말이 아니다. 지난해 1월 산외면 보라마을에서 주민 이치우(당시 74세)씨가 공사에 반대하며 분신해 숨졌다.
추수철 농사일을 뒤로한 채 아픈 몸을 이끌고 산으로 오르는 주민들, 구덩이를 파고 "끌어내면 여기 파묻히겠다"고 소리치는 노인들을 외부의 누군가가 조종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시위 요령이 부족한 고령자들이 자칫 크게 다칠까 봐, 제대로 먹지 못하고 추위에 떨까 걱정돼 달려간 시민들을 모조리 '외부 세력'으로 몰아가는 언론의 태도는 '밀양의 상처'를 더 깊게 만들고 있다.
한진중공업 사태, 강정마을 사태 등을 거치며 '희망'이라는 푯말 아래 약자를 위해 달려가는 시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심에서 벗어나 따뜻한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건전한 시민 의식이 뿌리 내리고 있다는 증거다. 이들이 등장할 때마다 '외부 세력'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일부 언론의 행태는 성찰이 필요하다. 시위 현장에서 불법을 저지르는 행위는 마땅히 비판하되, 연민에서 발로한 선의까지 짓밟아서는 안 된다. 연대가 필요 없는 사회는 없다.
강성명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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