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업가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어느 날 삶을 통째로 흔드는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자기를 빼닮아 똑 부러진 성격을 가진 아들이 6년 전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라는 전갈이었다. 결국 핏줄에 매여 자신의 친자를 데려와 사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료타는 갈등과 고민의 늪으로 빠져든다. 일본 영화의 간판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나은 정과 기른 정이라는 전통적 소재를 렌즈 삼아 가족주의에 매몰되어가는 일본 사회의 지금을 들여다 본다.
올해 8번째 부산을 찾으며 부산국제영화제의 단골 손님이 된 고레에다 감독을 최근 부산 해운대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원더풀 라이프'와 '아무도 모른다' '공기인형' '걸어도 걸어도' 등으로 한국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의 전작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4만1,557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 관람하며 예술영화 극장가에 흥행 바람을 일으켰었다. 잔물결 같은 장면들로 결국에 커다란 감정의 파도를 일으켜온 그의 연출법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도 여전하다. 이 영화는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2011년 도호쿠 대지진의 여진 아래 있는 영화다. 대지진 이후 가족을 중시하고 가족에 더 의지하려는 일본 사회의 모습을 반영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최근 2,3년 사이 일본에선 혈연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난 그런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소재가 "40년 전 일본에선 빈번하게 일어나던 일"이었지만 "핏줄 이외의 인간 관계도 중요하니 지금 다루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대지진 같은 재해가 일어나면 (혈연 이외의) 사회적 관계는 부수적이 되기 마련"이라고도 말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어느 날 갑자기 부모가 바뀌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이 마음을 흔든다. 2004년 '아무도 모른다'로 15세 소년 야기라 유야에게 칸 영화제 최우수 남자 배우상을 안겨줬던 고레에다 감독의 독특한 연기 지도 덕분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아이들에게 대사를 외우게 하지 않는다. 단지 귓속말로 이런 식으로 말을 해보라고 전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숙제처럼 대사를 외우지 않아도 되고 틀려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도 시달리지 않으니 아이들은 현장에서 놀듯이 연기를 한다"고도 말했다.
'공기인형'으로 배두나 함께 일했던 고레에다 감독은 앞으로 출연시키고 싶은 한국 배우를 묻자 주저없이 "다시 배두나"라고 답했다. "프로 정신이 매우 투철한 배우"라는 이유에서였다. "'공기인형'에서 배두나가 인형을 연기해 절대 울면 안 되는데 그는 혹시 촬영 중 울까 봐 분장실에서 미리 우는 배우였다"고 감탄했다. "영화를 찍는 동안 배두나가 배역에 감정 이입이 돼 울어서 딱 두 번 NG가 났어요. 한국 영화인들은 100% 준비해 촬영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그의 연기를 보고 깨달았죠."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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