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시 단장ㆍ부북ㆍ상동면 등 765㎸ 송전탑 공사현장. 공사 재개 닷새째를 맞은 6일에도 밀양은 앓고 있었다. 주로 노인들인 반대주민들은 농성을 계속했고, 한전과 시공업체 직원 260여명은 삼엄한 경찰경비 속에 군사작전처럼 헬기와 트럭으로 자재를 운반했다. 주말이라 큰 충돌은 없었지만, 여전히 밀양은 언제 폭발할지 모를 '화약고'다.
밀양 송전탑 갈등이 시작된 지 벌써 8년. 길고 긴 평행선은 결국 강행과 대치, 충돌로 막을 내리고 있다. 모든 게 출발 그대로다.
사실 밀양만 유별난 것도 아니다. 제주 강정마을에서도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그랬고, 미군기지 이전을 놓고 경기 평택에서도 그랬다.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 때문에 전북 부안에선 유혈폭동까지 겪었다. 경부고속철도 터널관통 반대논란을 빚었던 천성산도 있다. 긴 시간이 흘렀고, 그사이 수많은 국책 건설사업들이 추진됐지만, 갈등은 점점 더 깊어지고 평화적 해결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이번 밀양 사태를 계기로 대형국책사업 추진방식을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사회적 수요가 달라지고, 지역 이해관계가 한층 복잡해졌으며, 주민들의 의사표현과 시민사회단체의 개입이 확대됐음에도, 사업주체인 정부와 공공기관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은 매뉴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지역반발이 큰 기피ㆍ혐오시설 사업이다. 물론 내 지역엔 무조건 안 된다는 '님비(not in my backyard)'도 문제이고, 대안자체를 거부한 채 반대만 일관하는 지역주민이나 시민사회단체들이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국책사업인 만큼, 일차적 책임은 정부와 사업을 담당하는 공공기관에 있다는 게 일반적 지적이다.
특히 정부ㆍ공공기관은 반발이 뻔한 시설을 지으면서 밀실에서 부지를 선정하고, 발표 이후에는 "공공이익을 위해 협조해 달라"는 태도로만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른바 'D-A-D' 방식(결정 decide-발표 announce-방어 defense)인데, 이미 실패한 매뉴얼이란 평가다.
전문가들은 국책사업 갈등해결의 키는 결국 신뢰와 보상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2003~2004년의 부안 방폐장 갈등을 겪었던 한 정부 고위관계자는 "국책사업 갈등해결의 핵심은 결국 손해를 보는 지역에 대한 보상문제"라며 "무엇보다 납득할 만한 합리적 보상을 해야 하고 그에 앞서 충분한 정보 제공과 설득을 통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복잡한 현안은 자꾸 후임자에게 미루다 보니 해결은 점점 더 요원해진다"면서 지역의 '님비' 못지 않게 당국 및 사업주체의 님트(not in my term) 문제를 지적했다.
이젠 D-A-D방식을 접고, 입안부터 지역주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는 게 필요하다는 게 다수 견해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은 "국책사업 갈등은 국가적 공익과 지역주민의 사익이 충돌하는 분야인데 공익과 사익의 균형을 이루려면 절차적 공정성부터 지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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