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가장 성공한 동맹이다."
한미동맹을 두고 나오는 평가다. 과연 그럴까. 한미동맹만 놓고 보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일동맹과 비교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미동맹이 올해 환갑이라지만 미일동맹은 그 보다 두 살 더 많다. 군사적인 측면에서 봐도 주한미군의 수는 3만여명이나 주일미군은 5만여명이다. 경제력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아직 일본의 5분의1 수준이다. 미국에겐 아무래도 한국보다 일본이 더 중요할 수 밖에 없다. '가장 성공한 동맹'이란 말조차도 이전에는 미일동맹을 지칭할 때 썼던 표현이다. 한미동맹은 미일동맹의 종속 변수일 뿐이란 지적도 없잖다.
문제는 한미동맹이 미일동맹보다 한 수 아래이다 보니까 한국과 일본의 이해가 충돌할 때 미국이 일본 편을 들기 일쑤라는데 있다. 가장 큰 것이 바로 독도 문제다. 독도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함에 따라 우리 땅에 귀속되는 것이 당연했다. 승전국 미국도 처음엔 그렇게 정리하려 했다. 실제로 미 국무부가 작성한 대일강화조약(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1~5차 초안에는 일본이 반환해야 할 섬으로 울릉도와 함께 독도가 명기돼 있었다. 그런데 최종안에서는 독도가 빠진다. 일본은 이를 근거로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것을 미국이 인정했다고 지금까지 주장하고 있다.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정치고문으로, 일본계 부인을 둔 윌리엄 시볼드의 영향 때문이라는 게 학계와 외교가의 지적이다. 그는 미 국무부를 상대로 "독도를 일본령으로 편입해 레이더 기지를 건설하면 러시아를 방어하는데 유리할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결국 최종안이 수정됐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길 수 있는 빌미를 미국이 제공한 것이다.
미국에겐 한국보다 일본이 더 중요한 '불편한 진실'은 최근 미일 '2+2 회담'에서 다시 한번 확인됐다.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는 침략의 과거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재무장할 수 있는 길을 터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걸핏하면 연방정부 업무까지 마비될 정도로 살림이 버거운 미국에게 아시아 지역의 안보를 책임지겠다며 분담을 제안하고 나선 일본은 반가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이 우경화하면서 힘을 키울 경우 우리 역사는 늘 비극으로 이어지곤 했다. 경계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이 "일본이 역사와 영토 문제에서 퇴행적 발언을 계속하며 (우리를) 모욕하고 있다"고 지적한 지 3일만에 미국은 이 말은 한 귀로 흘려 보낸 듯 일본 재무장에 한 점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줬다. 우리는 무시를, 일본은 선물을 받았다.
일각에선 미일 군사동맹이 점점 강화되며 그 속에서 일본의 역할이 커지는 추세가 굳어질 경우 미국은 또다시 한반도를 일본에게 맡겨 관리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제2의 가쓰라-태프트 밀약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60여 년 전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미 국무부엔 일본인 아내를 둔 대니얼 러셀 동아태 차관보 등 한국통보다는 일본통이 절대 우위이다.
중국은 미국이 일본의 재무장을 부추기고 나서자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우린 뒤통수를 맞고서도 한미동맹으로 묶여 꿀 먹은 벙어리다. 동맹은 소중한 것이나 그 전제는 평등과 상호 존중에 있다. 일본이 더 큰 역할을 해 주기 바라는 미국의 가치와,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용서할 수 없는 우리의 가치는 같을 수가 없다. 적어도 일본의 재무장에 대해선 미국이 아니라 같은 피해자인 중국의 처지가 우리와 더 가깝다. 아무리 애를 써도 미일동맹의 짝퉁이 될 수 밖에 없는 한미동맹이라면 재고해야 할 때다. 중국을 그 지렛대로 활용,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게 답이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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