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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0월 7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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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10월 7일]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입력
2013.10.0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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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무심히 차창 밖을 보다 한 식당의 안내판에 풋 하고 웃고 말았다. 청와대 근처에서 남해 자연산 회를 내놓는 것으로 꽤 유명한 그 가게 밖에 걸린 문구는 이랬다. '방사능 안전업소, 방사능 측정기 보유! 손님께서 방사능 측정을 직접 하실 수 있습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통제가 잘 안 돼 방ㆍ유출되면서 후쿠시마 연안 어패류의 방사성물질 오염이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 오염수 문제가 알려진 뒤 멈췄던 이 지역 어민들의 조업이 최근 재개됐다. 어업협동조합이 조업 해역의 바닷물과 잡아 올린 어패류에 대해 방사성물질 검사를 한 결과 안전하다고 확인해 조업을 결정했고, 잡아 올린 어패류는 방사성물질 검사를 거친 뒤 시장에 내놓는다.

하지만 아무리 검사를 거친다고 해도 오염수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니 불안한 게 인지상정이다. 후쿠시마에서 250㎞쯤 떨어진 일본 수도권에도 그 같은 불안이 없지 않을 터이다. 20년 넘게 도쿄에 살고 있는 지인(한국인)에게 카톡으로 물었다. "도쿄는 방사성물질 우려가 어느 정도인가요?" 직업상 사람 만나는 것이 일인 그는 "생선이든 채소든 후쿠시마산은 검사를 마쳤다고 해도 잘 안 사게 돼요"라면서도 "불안감은 마비가 됐는지 거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후쿠시마와 태평양을 함께 면한 것도 아니고, 거기서 직선거리로 따져도 1,300㎞쯤 떨어진 서울 한복판 횟집에서 방사성물질 측정기가 등장해야 할 이유는 뭘까. 횟집 매출이 뚝 떨어지고 특히 부산의 경우 폐업 점포까지 생길 정도의 '공포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일본 원전 사고의 영향이 별것 아니라거나, 한반도는 그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만일의 위험에 기민하고도 철저하게 대응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맞먹는, 아니 사고 원전의 규모나 방사성물질 확산의 정도에서는 그를 뛰어넘는 인류 역사상 초유의 사고에 안전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선은 한국 정부에, 근본적으로는 일본 정부에 피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거듭 촉구하고, 또 감시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지금 서울 횟집에 방사성물질 측정기가 등장하고, 전국의 횟집이 파리 날리는 상황은 '과민 반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도대체 이런 불안에는 어떤 근거가 있는 것인가. 엊그제 원자력안전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지난 달 국내 최남단 해역과 울릉도 부근 바닷물을 분석한 결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유출의 영향이 없었다.

이런 집단 불안은 약간의 꼴불견("재밌잖아"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과 식생활에 사소한 영향을 주는 정도이니 그다지 시비 걸 일도 아니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는 이런 식의 집단 불안이 여러 사안에 상시적으로 잠복해 있고 일정한 계기만 주어지면 심각한 증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의 선거 개입 혐의가 불거져 검찰 수사가 진행된 뒤부터 마치 한 편의 연속극처럼 이어지는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혁명조직(RO) 사건' '채동욱 혼외자 소동'의 뿌리에도 집단 불안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어떤 불안일 것 같은가. 바로 보수우익이 조장하는 '좌파에게 정권이 넘어갈지 모른다'는 불안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교학사 교과서의 필자 중 한 사람이 지난 달 여당 의원, 지역위원장 등 10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쏟아 내고 박수로 환영 받은 말들은 그런 불안이 얼마나 그릇된 현실인식에서 비롯한 것인지 잘 보여준다. "한국의 좌파들은 문화계의 70% 이상을 장악했고 선거전을 통해 10년 내에 한국 사회를 구조적으로 전복할 것이다." 혹시 지난 대선에서 야당 후보를 지지했다면 그들 눈에는 당신도 '좌파'일 것이다. 근거 없는 불안은 영혼을 갉아 먹을 뿐이다.

김범수 문화부 부장대우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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