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계에서는 뜨거운 여름이 젊음의 열기를 발산하는 락페(락페스티벌)의 계절이라면, 가을에는 사뭇 진지하면서 풍성한 무대의 축제로 활기를 띤다. 영화, 재즈, 무용, 오페라, 연극 등 장르도 다양하여 그 안에 푹 빠져 휴식과 재충전을 하기에 제격이다. 다행히 매년 이맘때쯤이면 서울은 물론 부산, 대구, 전주 등 지방도시에서도 축제가 활발하다. 그런데 이런 축제들은 대체로 열릴 만한 곳에서 열리게 되는데 도대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동네에서 열리는 경이로운 축제가 있느니 바로 자라섬재즈페스티벌과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이 그렇다.
자라섬재즈축제가 열리는 경기도 가평은 전형적인 농산촌 지역이다. 청평을 지나 춘천에 가기 전 북한강 한가운데 자리잡은 자라섬은 관광객이 들락거리는 남이섬 옆에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지역주민들에게조차 관심 밖에 있던 섬이었다. 백년에 한번 올 확률의 홍수에 잠기는 특성상 하천부지로 편입되어 어떤 시설도 할 수 없어 개발도 불가능한 불모지였다. 그런데 이 섬은 이제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재즈축제로 인해 버려진 무인도에서 지역의 대표적인 명소로 발전하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십 년 전 무시무시한 폭우 속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룬 이 축제는 매년 그 성장을 거듭하여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동안 축제로서의 성공만이 아니라 실제로 지역의 지형도를 바꾸어 놓았다.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뮤지션들은 마치 성지순례를 하듯 이 시기에 이곳을 찾는다. 그리고 꼭 재즈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많은 젊은이와 가족들, 그리고 외국인까지 몰려들어 가히 피크닉 콘서트의 정수를 보여준다. 캠핑과 캐러바닝도 그 열기에 한몫 거들고 덩달아 읍내도 활기를 띤다.
반면 울산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업도시다. 개발시대 중공업으로 나라의 발전을 이끌었다는 그 자부심과 저력은 지금도 남아있다. 지역의 소득수준만 놓고 보면 단연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도시는 문화나 자연과는 다소 거리가 먼 지역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육중한 공장과 공산품을 실어 나르는 집채만한 수출선박들만 떠오르는 딱딱한 도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 옛날 페르시아에서 건너와 다문화의 원조격이자 우리 역사상 가장 이국적 인물인 처용만큼이나 국제적인 색채의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어떻게 이런 축제가 이 공업도시에서 가능키나 한 것인가, 그 프로그램의 수준과 기획의 안목이 실로 훌륭하다. 이 축제가 아니면 도대체 문화적인 목적으로 울산을 찾게 할 동력이 또 있을까 존경스럽다. 월드뮤직이라는 장르의 특성만큼이나 지역에서 의연히 열리고 있는 이 축제는 그 위상에 걸맞게 독자적으로 열릴 만도 한데 아직 지역의 인식이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아쉽긴 하다.
그런데 이 두 축제에는 너무나 대조적인 지역의 환경과는 달리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축제의 산파역부터 함께 해 온 인재진, 이정헌 두 감독의 존재이다. 알고 보면 축제의 성공에는 이들의 선구자적인 노력에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내는 국내외 최고의 아티스트와 스태프 그리고 서포터들의 숨은 협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이제 지역에서는 이런 인적자원의 소중함과 가치에 대해 남다른 인식으로 각별한 지원과 협조를 아끼지 않아 이들이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헌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끔은 이들로 인한 성과가 외부에서의 찬사와는 달리 오히려 안에서는 홀대받는 경우를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에딘버러니 아비뇽이니 아스펜이니 바이로이트니 하는 해외 유수의 축제를 부러워한다. 다양하고 수준 높은 프로그램에 수많은 방문객이 찾아와 그 도시의 매력과 문화를 만끽하고 나아가 관광과 경제 등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축제의 성공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동안 예술가와 기획자들의 노력에 주민과 정책이 힘을 보태 함께 만들어 온 것이라는 점은 간과하기 쉽다. 지역이 축제를 잘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는 축제가 지역을 살리는 법이다.
이선철 용인대 교수 ·감자꽃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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