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제주도에 일본으로 가려던 서양 배 한 척이 난파된다. 조선은 이 배에 타고 있던 색목인들을 13년간 억류했고, 이들은 여수에서 몰래 배를 구해 일본 나가사키로 탈출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서양인들의 국적은 네덜란드, 대표적 인물은 훗날 고국으로 돌아가 조선 안내서인 를 쓴 헨드릭 하멜이다.
광주 민주화운동부터 자전거 여행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넘나들며 각종 아동문학상을 석권해온 김남중(41)에게 이 이야기가 떠오른 것은 "집-학교-학원의 강철 삼각형에 갇혀 사는 요즘 어린이들을 보며 느낀 답답함" 때문이었다. 그 견고한 삼각형의 한 귀퉁이를 툭 틔워주고 싶다는 갈망은 그의 가슴 속에 바다의 해풍을 불러일으켰고, 그 해풍은 하멜 일행이 탈출한 배에 숨어든 가공의 조선 소년 '해풍이'를 탄생시켰다.
이야기꾼의 저력은 해풍이의 모험담에서 다시 한 번 빛난다. 바다에 나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음흉한 빚쟁이 영감은 해풍이를 20년간 머슴으로 부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꽃처럼 고운 누나 해순이를 탐낸다. 하지만 해순은 마을에 사는 네덜란드 청년과 이미 좋아하는 사이. 조선을 탈출할 계획인 눈 푸른 청년은 그동안 모은 돈 항아리를 내놓으며 해순을 구하고, 마을 밖을 한번도 벗어나본 적 없는 해풍은 나가사키로 밀항하는 이들의 배에 몰래 올라탄다.
이야기는 일본에 간 해풍이 하멜 일행과 떨어져 조선인 도예촌에 머물게 된 과정, 박해 받는 천주교도들의 이야기, 우여곡절 끝에 하멜 일행과 재회하게 되는 과정 등으로 이어지다가 해풍을 눈여겨본 일본 영주의 오른팔 기무라의 명령으로 범선을 타고 네덜란드로 떠나는 데서 끝을 맺는다. 당시 일본의 쇄국 정책으로 일본인은 나라 바깥으로 나갈 수 없었지만, 유럽 대륙의 문물은 반드시 배워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
인물들의 다양한 감정을 섬세하게 조율하는 작가의 솜씨 덕분에 이야기는 박진감 넘치는 모험담을 넘어 한편의 성장소설로도 매끈하게 읽힌다. 항해와 모험의 과정을 매년 두 권씩 후속편으로 이어가 총 4부로 완간할 예정이다. 초등 3학년 이상.
박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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