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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10월 5일] 박근혜대통령의 속 좁은 사과

입력
2013.10.0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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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기초연금 후퇴 논란과 관련해 지난달 26일 국무회의에서 "어르신들 모두에게 지급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다음날에도 노인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거듭 "안타깝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라고 했다. 당초 유감 표명에 그칠 것으로 생각했던 언론은 예상을 넘은 표현에 사실상 사과로 인정했다. 그러나 내용으로나 형식으로나 진정성이 담긴 사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박 대통령은 "저를 지지하고 신뢰하신 어르신들"이라고 대상을 한정 지었다. 정작 불만이 많은 이들은 청ㆍ장년층이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났듯이 기초연금 후퇴에 대해 30~50대의 부정적 평가가 노인층보다 훨씬 높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길수록 손해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사과의 대상은 국민 전체이지 일부 어르신이 아닌 것이다.

이런 사안은 내용 못지않게 형식도 중요한 법인데 국민을 상대로 직접 이해를 구하지 않고 국무회의 자리에서 입장을 밝힌 것은 옹색했다. 냉정히 말해 복지 공약은 박 대통령 당선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줬다. 누구를 찍을지 정하지 못한 유권자 가운데 박 대통령의 복지 공약을 보고 손을 내민 이들이 적지 않다. 복지 등 먹고 사는 문제에서 여당 후보나 야당 후보나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여당 후보에게 쏠리기 마련이다. 정치인이 유권자에게 한 약속은 천금의 무게를 지닌다. 그런 중요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는데 국무회의 말미에 한 마디 걸치듯 넘어간 것은 부적절했다. 대국민 담화 형식으로 전 국민에게 솔직히 이해를 구했어야 마땅하다.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 파동도 따지고 보면 박 대통령의 인색한 사과와 무관하지 않다. 정권의 핵심 공약이 후퇴한 데 대해 공약 수립에 관여한 주무 장관이 책임을 지는 행위는 칭찬을 하면 해야지 나무랄 일은 아니다. 이런 큰 일이 벌어졌는데 주무 장관이 아무 일 없었던 듯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신뢰와 원칙을 자산으로 삼아온 박 대통령으로서는 공약 후퇴라는 말은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게다. "공약 포기가 아니다" "임기 내 반드시 실천할 것"이라는 언급에 그런 인식이 담겨있다. 그러나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가장 확실한 카드인 증세 문제는 놔두고 임기 내 실천을 강조한들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원칙도 좋고 믿음도 좋으나 현실은 현실대로 인정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사과에 인색한 모습을 보여왔다. 취임 직후 청와대가 지명한 고위공직자가 줄줄이 낙마해 비판 여론이 높자 대변인이 비서실장 명의의 세 줄짜리 사과문을 대신 읽어 되레 민심을 악화시켰던 기억이 생생하다. 대통령이 해야 할 사과를 비서실장이, 그것도 대변인을 시켜 읽게 한 것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었다. 뒤늦게 박 대통령이 죄송하다고 했지만 이미 민심은 싸늘히 식은 뒤였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의혹 사건 때도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이 아닌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짤막하게 송구스럽다는 말만 했다. 이전 대통령들은 핵심 공약을 바꾸거나 축소할 때 대국민 사과를 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쌀시장 개방 불허를 약속했다 우루과이라운드(UR)로 공약을 파기하게 되자 TV 생중계를 통해 16분 동안이나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되자 청와대에서 특별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과가 효과를 내려면 상대방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진정성이 담겨있어야 한다. 싫은데도 억지로 하는 빈말은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6번, 이명박 대통령은 7번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 대통령도 앞으로 국민에게 사과할 일이 더 있을 것이다. 그때는 국민들이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과했으면 한다. 실망과 배신감에 빠진 국민을 제대로 다독거릴 수 있어야 진정한 사과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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