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의 걸작 (일명 )가 완성된 지 꼭 500주년이다. 1513년 탈고됐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의 사후인 1532년 출간된 는 단테의 을 제치고 가장 많이 번역된 불후의 이탈리아 고전이다.
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권모술수의 교활한 교본'이라는 혹평부터 종교나 도덕의 세계로부터 독립해 독자적인 정치의 세계를 발견한 '근대 정치 사상의 독보적 출발'이란 극찬까지 극단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는 모순어법, 수사적 장치, 역사적 사실의 의도적 조작에다 해학까지 가세해, 오독의 여지가 가장 많아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수께끼 같은 책이다.
대표적인 예로 볼로냐대학에서 마키아벨리를 연구한 수재였던 무솔리니는 에서 '이기적인 인간 본성'과 '힘에 대한 찬양'만을 읽었다. 그래서 사회주의자였던 무솔리니가 파시스트로 전향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일지 모른다. 국내에서도 는 학계에선 '군주의 교본'으로만 읽히거나 어느 한쪽 측면만 강조돼 왔고, 일반인에게는 자기계발서로 소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마키아벨리 연구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숭실대에서 봉직하고 있는 저자는 가 '군주의 교본'을 넘어 '시민의 교본'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이 책을 둘러싼 오해와 오역, 논란을 걷어내기 위해 때로는 한 문장씩, 때로는 한 장씩 이탈리아어 원문을 직접 번역해 텍스트 중심으로 재조명했다.
저자에 따르면, 지난 500년 동안 무수한 오해와 다양한 견해 속에서도 에 대한 일치하는 평가가 있다고 한다. 즉, 정치의 본질적인 요소인 '힘'에 대한 통찰력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힘은 권력과 권위에 국한되지 않고, '지배를 받지 않으려는 열망'까지 포함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이 같은 힘에 대한 통찰을 통해 '지배를 받지 않으려는 열망'을 가진 '다수'의 뜻을 충족하는 것이 곧 강력한 나라의 원동력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런 생각이 변화를 추구하는 시대적 열망을 대변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이탈리아 통일을 염원했던 혁명가뿐만 아니라 프랑스혁명 지도자도 이 책을 통해 변화의 열망을 키워 나갔다. 러시아혁명을 주도했던 트로츠키는 "마키아벨리는 민주주의 혁명을 보급시킨 정치철학자"라고 평가했다.
마키아벨리가 살았던 16세기 초 피렌체가 그러했듯이 현재 한국 사회도 정치철학의 빈곤과 정치적 상상력의 부재를 경험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무능한 정치인들이 만들어 내는 절망적 대치다. 게다가 좌와 우, 보수와 진보 등 자의든 타의든 특정 진영 논리에 편입되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키아벨리의 지혜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마키아벨리의 지혜는 편 가르기와 편견을 내려놓으라고 요구한다. 마키아벨리는 시대를 초월해 존재하며 불변하는 인간의 본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관찰만으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는 겸손한 태도를 견지했기 때문이다. 그는 '갈등이 곧 정치의 본질'이라고 생각했지만, 제도화되지 않은 갈등은 곧 부패와 몰락의 지름길이라고 믿었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마키아벨리의 를 꼼꼼히 다시 읽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에는 우리의 닫힌 마음들을 활짝 열어 줄 수 있는 재치와 진지함이 가득하기에 시민적 자유를 위한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출간 500주년을 맞아 이탈리아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는 마키아벨리 관련 전시와 강연 등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마키아벨리 500주년 기념위원회' 주최로 '2013년 한국 정치, 왜 마키아벨리인가'라는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린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마키아벨리와 한국 민주주의'라는 주제로, 곽준혁 숭실대 교수가 '민주적 리더십:군주의 가려진 진실'이라는 주제로, 김상근 연세대 교수가 '마키아벨리와 그의 시대'라는 주제로 논문을 발표한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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