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4개월 차인 회사원 최은미(24ㆍ가명)씨는 근무 시간 자기 자리로 전화만 걸려오면 심장 박동수가 빨라진다. '말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대답을 이상하게 해 통화 상대가 흉을 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업무 특성 상 전화통화가 잦은 편이지만 통화가 끝날 때마다 땀으로 축축해진 손을 닦아내기 바쁘다. 최씨는 "전화 벨소리가 울려도 모른 척하고 화장실로 도망간 적도 있다"며 "웬만하면 전화 대신 메일이나 메신저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올해 7월 결혼한 주부 박은혜(24ㆍ가명)씨는 지방에 혼자 사시는 시어머니에게 안부전화를 걸 때마다 작은 전쟁을 치른다. 1시간에 걸쳐 대화 주제와 내용을 종이에 빽빽하게 적어둔 뒤에야 전화 버튼을 누른다. 처음 시어머니와 통화할 때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거나 그나마 내뱉는 말도 버벅거려 "몸이 안 좋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은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전화통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불편해하는 정도를 넘어 '전화공포증(포비아ㆍphobia)' 수준의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인터넷에는 회사에서 고객이나 상사와의 통화가 부담스러워 피하고 싶다는 글들이 더러 눈에 띄고, 스피치 학원에는 '전화 걸고 받기 훈련', '다양한 상황에서 말하기 연습' 등 통화 관련 프로그램이 개설되고 있다. 서울의 한 스피치 학원 관계자는 4일 "낯선 사람이나 부담스러운 상대와의 전화통화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젊은 20~30대들이 상담을 의뢰할 때가 있다"고 전했다.
음성대화를 기피하는 현상은 젊은 세대일수록 심하다. 청소년기부터 스마트 폰 메신저를 통한 사적 대화에 익숙해져 있는 탓이다. 대학생 이지영(20)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가족들과의 대화도 거의 스마트 폰 메신저로만 했다"며 "가끔 교수님에게 전화 걸 일이 생기면 말이 잘 안 나와 어쩔 줄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이 지긋한 직장 간부 중에는 젊은 사원들이 업무상 통화해야 할 일까지 문자로 알려 황당하다는 이들이 많다.
음성대화가 외면당하는 현실은 통계로도 잘 나타난다. 국내 한 통신업계에 따르면 2013년 8월 현재 국내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5,415만명으로 지난 3년 간 꾸준히 증가했지만 2010년 204분이었던 1인당 월 평균 음성통화량은 2012년 말 175분으로 떨어졌다. 반면 스마트 폰 사용자의 SNS 하루 평균 이용시간은 약 73분으로 음성통화 시간(약 59분)보다 많았다. 특히 20대는 가입자 중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는 비율이 61%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음성대화를 할 경우엔 대화 내용과 함께 긍정적∙부정적 감정이 즉각적으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부담이 더 크다. 전문가들은 메일이나 메신저에서 시간을 두고 감정이 드러나는 수위를 조절하는데 익숙한 젊은 층이 점점 음성대화를 기피하게 된다고 분석한다. 나은영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현대인들이 가장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매체인 목소리 대신 문자에만 의존하면서 생긴 현상"이라며 "SNS 상에서 친한 사람들끼리의 문자 소통에만 지나치게 익숙해져 다른 사람들과의 직접 대화는 불편해하는 대인불안 현상이 심해지면 업무 등 공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지장을 받는다"고 말했다.
오강섭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전화공포는 상대와 매끄럽게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해 자신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란 두려움을 갖는 불안 장애의 하나"라며 "심할 경우 약물과 인지행동 치료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