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 어머니의…' 佛서 영구전시한국적인 맛 전하는 데 최우선… 바늘과 실로 연결한 조형물들프랑스와 한국땅의 인연 표현… 폐기물 활용에도 깊은 인상정원 디자이너 되기까지시골 아이들에 벽화 그려 주며 환경미술의 효용성에 눈떠英 유학갔다 박람회 합격이 전기익숙한 한국의 자연 구현그자체만으로 정말 아름다워 나라·장소마다 깃든 스토리에 접목이야기가 있는 정원 만들고 싶어
프랑스 동부의 작은 도시 롱스르소니에르(롱스)시에 '순천 정원'이 생겼다. 한국인 정원디자이너 황지해(37)씨가 작년 네덜란드 정원박람회(벤로 플로리아드)에 정부지원을 받아 출품했던 작품 '뻘, 어머니의 손바느질_순천만'이 이곳으로 옮겨져 9월 24일 준공식을 가졌다. 1,600여평의 공간에 한국정원으로 영구보존될 예정이다. 원래 정원박람회에 공개되는 작품은 박람회가 끝나면 사라지는 운명이나 전시를 본 롱스시 시장이 장소를 제공할 테니 옮겨달라고 요청해서 순천시와 아시아나항공의 후원으로 이전이 성사됐다. 롱스는 인구는 적으나 온천도시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한국작가의 정원이 유럽에 영구적으로 자리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황씨는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정원박람회인 첼시플라워쇼에 2011년 출품한 '해우소_근심을 털어버리는 곳'이 가든부문 최고상과 금메달을 동시 수상한 데 이어 2012년 역시 첼시플라워소에 공개한 '고요한 시간_DMZ 금지된 정원'이 전체 최고상인 회장상과 쇼가든 부문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인 정원디자이너로 발돋움한 인물. 작년에는 일본 가드닝월드컵에서도 세계 10대 작가의 한 명으로 초대전을 갖기도 했다. '고요한 시간_DMZ 금지된 정원'은 2016년까지 영국 런던 템즈강변의 런던플레저가든공원으로 옮겨져 장기전시되고 있기도 하다. 4월에 열려 이달 20일까지 순천에서 계속되고 있는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는 그의 작품 '갯지렁이 다니는 길'이 관람객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여름, 순천에서 만났던 그를 카톡으로 다시 인터뷰했다.
-지금은 어디 있어요?
"런던에 있습니다. 여기서 11월 4~6일 열리는 코트라 한류박람회에 전시할 정원을 준비중입니다. 제목은 '0.001_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인데 0.001도만 낮아도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힘을 통해 낮은 곳을 풍요롭게 하는 경제가 진정한 의미의 이상적인 경제체제라는 이야기를 담으려고 합니다."
-프랑스 롱스시에 영구설치된 한국정원에 대한 현지 반응은 어땠어요?
"인구 2만의 작은 도시라 이런 정원이 생기는 것 자체가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전기동력으로 날개를 열고 닫는 '에그플라워'를 비롯해 피라미드형 언덕이 있고 그 사이에 억새 질경이 히어리 백송 같은 한국의 식물을 옮겨 기하학적이면서 동시에 한국적인 정원의 맛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손바느질'이라는 원래 제목에서 아시겠지만 바늘과 실로 땅을 연결하는 조형물을 만들어서 프랑스 땅과 한국땅이 바늘로 꿰매듯 연결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는데 다들 재미있어 했어요. 여기서도 순천과 마찬가지로 폐기물을 재활용한 정크아트를 바닥에 선보였는데 ?y르샤르 시장님은 그게 제일 인상적이라고 해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일본 한국, 5개국에서 정원을 만들었는데 나라마다 다른 게 있습니까?
"유럽은 자유민주국가인데 일하는 것을 보면 공산국가 같아요. 공무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해서 기다려야 하는 고충이 컸습니다. 사람들이 감정적이며 게으르고 일을 벼락치기로 해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 같이 일하는 사람 하나 하나에게 일의 목적과 의미로 동기부여를 해줘야 작업이 이뤄지더라고요. 주말에는 일을 안 하는 게 법으로 정해져 있어서 작업이 더 더뎠어요. 그러나 감성이 뛰어나고 자연과 인간을 존중하는 태도는 우리가 따라가기 힘들고요. 일하기는 한국 사람들이 정말 탁월하지요. 한국사람들은 손가락 한 개가 더 있어요. "
-나라마다 작업방식을 달리하나요?
"나라마다가 아니라 장소마다 달라요. 어디든 그 땅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걸 찾아서 중심 이야기를 짜요. 순천에 갔을 때는 순천의 특징은 순천만이라고 봤어요. 그건 수십만평의 자연뻘이잖아요. 그런데 순천 안쪽에 자리잡은 정원박람회장은 원래 논이 있던 곳이에요. 이건 농부들의 생계 터이자 또 인공적인 뻘이에요. 순천의 본질이 바로 이 뻘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뻘 속에 사는 갯지렁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생태계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갯지렁이. 열심히 논을 갈아서 가족을 먹여 살리는 농부들. 노동이라는 게 얼마나 멋져요. 그런 이야기가 있는 정원을 만들고 싶었어요. 자연의 주인공을 경외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인간의 삶을 고민하자는 뜻에서 갯지렁이 정원을 만들었어요. '갯지렁이 다니는 길' 정원을 보면 갯지렁이 뱃속을 상징한 튜브 모양의 갤러리와 도서관을 만들었고 모든 문의 높이를 1.2m로 낮추었어요. 고개를 숙이고 이 문을 지날 때마다 작은 것들의 가치를 함께 생각하길 바란 거지요. 사초(grass)들로 덤불숲을 만들고 동물들이 짝짓기를 하고 있으니 인간은 조용히 하자는 공간도 있어요."
-순천의 갯지렁이 공원에서 제일 놀라운 것은 갯지렁이도서관 창 밖에 바로 오목눈이가 집을 지은 것이었어요. 정원이 완성된 지 100일도 안되어 도서관 바로 옆에 심어놓은 방아풀 사이에 오목눈이가 집을 짓고 알을 4개나 깠다고요. 어미 오목눈이가 날아와 새끼들에게 먹이를 물어다주는 걸 제 눈으로 직접 봤어요. 새들을 불러오는 정원이라는 게 놀라워요.
"원래 정원은 벌과 나비 뿐 아니라 새까지 날아와야 완성이 돼요."
-그러니까 새를 끌어들일만큼 그 곳에 맞는 식물을 딱 맞게 심었다는 뜻이잖아요.
"어디서나 자연을 그대로 살리려고 해요. 한국의 정원은 고요함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새들과 나비, 보이지 않는 생태계는 이 고요함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요. 그러니까 찾아오는 거지요. 그리고 식물을 고를 때에도 갯지렁이 화랑과 도서관 주변에 방아풀이나 머위처럼 한국인이 텃밭에서 가꿔서 나물로 먹는 친근한 식물을 배치했어요."
-어떻게 해서 정원디자이너가 됐어요?
"저를 정원디자이너라고 해야 할지 환경미술가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정확히 말하면 보이는 모든 곳을 디자인하는 사람이에요. 원래는 대학(목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어요. 시골에 교생실습을 갔다가 아이들을 위해 벽화를 그리게 됐는데 문화공간이 없는 시골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걸 보면서 환경미술을 시작했어요. 골목의 작은 벽화부터 조형물, 가로디자인, 쌈지공원 등의 환경미술 작업을 10여년간 해왔어요. 무생물만 다루다 보니 나무와 풀, 흙 같은 자연을 만지고 싶었어요. 그래서 2009년 무작정 조경분야가 유명한 영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어학연수를 마치고 조경디자인으로 유명한 인치발드 대학에 원서를 넣고 첼시플라워쇼에도 응모했는데 첼시플라워쇼 공모에도 붙고 대학도 합격한 거예요. 어느 곳을 선택할까 고민하다가 첼시를 선택했어요. 그렇게 해서 2011년에 선보인 첫 작품이 '해우소_근심을 털어버리는 곳'이에요. 해우소가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이잖아요. 화장실은 그렇게 잠시 가장 편안하게 마음을 놓는 공간이에요. 유학 와서 굉장히 힘들고 지쳤을 때 마음을 놓고 나를 1대1로 대면하게 해준 유일한 장소도 화장실이었어요. '해우소'를 만들기 위해 한국에서 질경이 수수꽃다리 도깨비부채 더덕 민들레 같은 들풀을 그대로 가져와 심었어요. 내가 느끼는 편안함을 영국의 심사위원들과 관객들이 인정해준 것이 신기했어요. 2012년에 만든 '고요한 시간_DMZ, 금지된 정원'은 한국전 종전 59년 동안 사람이 아무도 닿지 않아서 자연 그대로가 지켜진 휴전선 부근의 공간을 통해서 원시적 감성과 자연의 재생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원시적 감성이 살아있는 곳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DMZ는 정원이 가지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지요. 이 정원은 한국전쟁 종전 60주년과 한영수교 130주년(2013년)을 기념해서 플레저가든공원에서 2016년까지 전시되고 있어요. 그 후에는 퀸엘리자베스 올림픽공원으로 옮겨 영구보존하게 만들고 싶은데 후원자가 아직 정해지지 않아 고민입니다. (이 정원은 한국전에 참전한 용사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주고 왕실 가족이 좋아한 정원으로 영국 bbc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직접 본 것은 순천의 갯지렁이 정원 뿐이고 다른 곳은 사진으로만 봤지만 황지해씨가 만든 정원은 한국의 자연스런 산하 그대로여서 정말 신기했어요. 한국의 정원 개념이 원래 자연 그대로를 마당으로 끌어오는 것이지만 그래도 보통은 가장 이상화한, 자연의 화사한 모습을 구현하려고 하는데 한국인이 아주 익숙하게 보는 산하를 구현한다는 게 쉬운 것 같아도 쉽지 않은데요.
"원래 자연은 그 자체로 정말 아름답잖아요. 제가 본, 겪은 바로 그 자연을 재현하고 싶어요. 제가 어렸을 때 살던 전남 곡성의 한옥집은 뒷마당이 바로 산으로 이어져 있었어요. 그 산에 가서 매일 놀았는데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았어요. 지금 세상은 너무도 많은 인공적인 것들로 덮여있어요. 이런 인공 공간 위에 자연 그 자체를 데려다 놓는 한국식 정원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진짜 숨이 트이는 자유를 주는 이상적 정원의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인은 무언가 과시하거나 과장하지 않아요. 거칠고 투박해도 원시적인 자연 그대로의 자연성을 좋아해요. 그게 정원 구성에도 그대로 드러나는 거지요. 그리고 한국에는 4계절이 아니라 8계절이 있어요. 거의 다달이 모습이 달라진다 할만큼 자연이 다양하고 아름다워요. 그래서 저한테는 자연 그대로를 마당으로 끌어들이는 차경기법을 사용하고, 나무의 물결과 숲의 덩어리를 감상할 수 있는 바람이 좋은 언덕 언저리에 정자를 하나 놓는 게 이상적인 정원이에요. 이런 한국정원이 세계인들에게 똑같은 평화로움을 선물할 것이라 생각해요."
-어린 시절이 정원디자인에 미치는 영향도 큰가 봐요.
"엄마의 영향이 매우 커요. 제가 일곱 살 때 엄마가 이혼하고 제 밑에 남동생 둘까지 셋을 혼자서 키웠어요. 어머니는 아이들한테 잘해주셨지만 당신의 감성도 잃지 않았어요. 힘들 때마다 언덕에 올라 바람을 쐬면서 평정심을 찾았어요. 마당 한 켠에는 텃밭을 가꾸고 과일나무를 길렀어요. 앵두가 익으면 '지해야, 새들이 먹기 전에 앵두 따먹어라'그러셨어요. 순천 정원에 가면 엄마가 정원을 꾸미라고 기증해준 벤치가 갯지렁이 갤러리 옆 언덕길에 있어요. 그 뒤에 벚앵두나무를 심고 엄마의 저 말을 써놓았어요. 엄마가 돌리던 재봉틀도 '개미굴' 사이에 있어요. 이 '개미굴'은 곡면으로 만든 휴게시설인데 개미는 열심히 일하던 엄마이자 노동하는 저이기도 해요. 저는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가장 고상하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일을 하면서 겸손해지고 일을 통해 착해져요. 노동은 내 속에 있는 좋은 것들이 빛을 보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개미가 좋아요."
-갯지렁이 정원도 그렇고 롱스시에 만든 정원도 그렇게 고철이나 폐자재를 모아 예술적인바닥을 만든 것도 재미있어요. 버려진 것을 재활용하는 특별한 뜻이 있나요?
"가난한 재료들이 모여서 풍요로운 이야기를 하잖아요. 저는 옷도 재활용 구제품을 사입어요. 순천 갯지렁이 정원에 들어설 때 등장하는 자연스런 회화나무 군락도 원래 공사현장에서 버려지는 나무들을 공무원들이 옮겨줘서 심었어요. 곳곳에 보이는 돌덩이들도 모두 정원을 만들 때 거기서 나온 걸 재활용한 것이고요. 바닥의 철물은 순천에서는 고물상에서 버리는 걸 많이 주워왔고 롱스에서는 폐차장에서 구했어요. 폐차장 고물인 걸 아는 시민들이 정원을 보러 와서 너무들 재미있어 했어요. 앞으로 폐차를 이런 식으로 하자고."
-영국에서 올해 첼시플라워쇼에 참여하지 않아서 매우 아쉬워했다고요. 내년에는 참여하나요?
"순천만정원박람회 작업을 하느라 참여하지 못했어요. 내년에는 다시 참여하고 싶은데 어찌될 지 모르겠어요. 수백종의 식물을 옮겨야 하는 정원 디자인은 큰 돈이 들어가요. 국가나 기업 차원의 후원이 없이 개인의 비용만으로는 매년 참여하기가 어려워요. 한국에서는 정원 디자인에 대한 이해가 낮아서 선뜻 나서려는 기업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유럽에서는 지금 당장 정원을 만들지 않으면 30년 후에 3,000개의 정신병원이 생길 거라는 말이 있어요. 뿐만 아니라 정원을 통해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효과도 있잖아요. 첼시플라워쇼는 전세계가 주목하는 정원박람회니까 한국 기업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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