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간의 대결이 심해지는 것은 두 체제의 권력 주체가 극단주의적 정책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남쪽에 극우 수구 세력이 집권하고 북쪽은 극좌 군부가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면 남북간 냉전 대결이 극단으로 치닫게 마련이지요.”
한완상(77) 전 부총리는 4일 자신의 신문 연재 비망록을 묶은 (한울 발행) 출간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남북 정권이 공히 “정치적 위기에 봉착할 때 이 위기를 관리하고 극복하기 위해 상대 체제로부터의 위협을 심각한 것으로 각색하고 과장한다”며 “남에서는 반정부 세력을 ‘친북 좌파ㆍ주사파’로 몰아 제거하려 하고 북에서는 ‘친남ㆍ친미ㆍ주자(走資)파’ 세력으로 매도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남쪽의) 극우 권력은 (북쪽의) 극좌 권력을 의도와는 관계없이 결과적으로 도와주는 꼴”이 되며 “이런 적대적 공생 관계가 작동하면 한반도에는 절대 평화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전 부총리는 책에서 김영삼 정부의 통일원 장관을 맡아 남북 관계에 진전을 보려던 이야기, 김대중 정부에서는 직접 남북 문제를 맡지 않았지만 조언자로서의 활동이나 북한 방문, 그리고 교육 부총리 경험을 담았다. 관료로서 그의 운명은 남북 문제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었는지, 책은 노무현 정부 시절 적십자사 총재를 맡아 또 북한을 오간 일들로 마무리한다.
담긴 이야기들은 한결같이 지금의 남북 관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해 보게 만든다. 그 중에서도 ‘비망록’이라서 가질 수 있는 흥미진진함까지 오롯이 살아 나는 대목은 역시 실세 부총리로 남북 관계를 지휘했던 문민정부 시절이다. 자신이 주도해서 작성한 김영삼 대통령 취임 연설문에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는 문구를 넣었고 그것을 당시 김일성 주석이 몇 번이나 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일, 햇볕 정책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 이를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하려 했으나 별로 귀담아 듣지 않는 모습을 보고 노벨상 놓치는구나 생각했다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그는 당시를 돌이키며 가장 힘들었던 일들을 몇 가지 손에 꼽았다. 리인모씨를 보내기로 발표한 다음날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을 한 것도 그 중 하나다. 그는 “뒤통수를 얻어 맞은 느낌”이었다며 “김일성이 강경 군부를 전혀 관리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 회견에서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도 하지 않겠다”는 말을 만류에도 불구하고 굳이 해버려 이후 북한이 공개적으로 새 정부를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나 서로 친분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김 대통령이 한국의 인권 문제에 관심 많고 서민적인 제임스 레이니 주한 미국 대사를 싫어했던 것도 힘들었던 일들이다.
개성공단을 빼고 나면 남북 관계가 문민정부 초기보다도 한참 후퇴해버린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그는 현 정부가 새로 제시한 대북정책인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시했다. “신뢰 프로세스가 작동하려면 상대방의 신뢰를 받는 게 제일 중요하지요. 그런데 이 구상의 결정적인 결함은 상대에 신뢰를 주기는커녕 굴복시키려는 것으로 이해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미국이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나 최근 전작권 연기와 연계돼 미사일 방어(MD) 도입 움직임이 가시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적잖게 우려했다. 중국 견제가 목적인 이런 정책을 실행할 경우 미국은 중국과 갈등이 깊어질 게 뻔하고 그렇게 되면 남북 문제 개선을 원하는 “우리로서는 해답이 없다”는 것이다.
한 전 부총리는 “6자회담 틀을 유지하면서 남북미중의 4자가 적극적으로 머리를 맞대야 하고 북미 양자 대화도 진전시켜야 한다”며 “정부가 정전 60주년을 맞는 올해부터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바꿔나가는 일을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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