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55)씨는 아침마다 '딸 죽음의 진실을 밝혀달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청와대 앞으로 간다. 1인 시위를 마치는 해질녘이면 명동, 종로 등 인파가 많은 거리에서 행인들을 붙잡고 재수사를 촉구하는 서명을 부탁한다. 올해 2월부터 7개월간 거의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가지만 앙상했던 청와대 앞 가로수들이 싱그러운 녹색으로 뒤덮였고 곧 색색 단풍으로 물들 테지만 김씨의 마음은 아직 2월 삭풍처럼 얼어붙어 있다.
김씨의 딸 주희(사망 당시 11세)는 2001년 6월 쌍둥이 중 동생으로 태어났다. 엄마 뱃속에서 6개월 만에 나온 터라 쌍둥이는 장애가 심했다. 특히 주희는 시각장애 1급에 뇌병변 4급, 간질 증세까지 있어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딸이었다. 학교 갈 나이를 넘기자 김씨는 마음이 급해졌다. 다행히 생활재활교사 3명이 24시간 곁에서 돌봐준다는 충주의 시설에서 입소가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당직교사들은 야간에도 아이들이 모두 잠든 뒤에만 4시간 취침이 허용된다는 설명에 안심할 수 있겠다며 2011년 10월 맡긴 그 곳에서 주희는 1년여만에 영원히 눈을 감았다.
김씨에게는 2012년 11월 8일 주희의 사망 순간부터 검찰 수사까지 모든 게 의문투성이다. 김씨는 "골반, 왼쪽 귀 뒤, 오른쪽 목, 등에 무엇으로 맞은 듯 움푹 패인 깊은 상처들이 있는데 매일 돌보고 목욕을 시키는 교사들은 언제 생긴 것인지 전혀 몰랐다고 하고 수사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며 "경찰에 신고한 것도 숨진 지 12시간 40분이 지난 뒤였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시설 측은 "의자 팔걸이에 목이 낀 채로 숨져 있었다"고 했지만 현장 보존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이미 호흡과 맥박이 정지한 주희를 병원으로 옮겼고, 보호자 동의 없이 안치실로 이동시킨 사실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당일 오전 1시 50분 주희가 잠에서 깬 것을 알고도 당직교사가 옆 방에 들어가 잠을 잔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는 '사인불명'이었고, 올해 5월말 청주지검 충주지청은 당직교사를 포함, 시설 관계자 전원에게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아이를 방치한 것을 비롯해 곳곳에서 시설의 과실 의혹이 제기됐지만 검찰은 "인과관계가 없고 당직교사가 잠을 잤다고 한 것은 양심선언으로 볼 수 있어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했다.
황당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담당검사에게 다시 부검을 하자고 수 차례 간곡히 부탁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김씨는 "검사가 '타살, 학대 등에 대해 철저하게 수사할 테니 주희를 그만 보내주자'고 해서 믿고 화장을 했는데 3일만에 검사가 바뀌었다. 새로 온 검사는 시신이 없는 상태에서 사진으로만 수사를 하고 끝이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6월 말 대전고검에 항고했고, 고검은 3개월 넘게 사건을 검토 중이다.
김씨는 변호사 수임료, 생활비 등을 대느라 5,000만원이 넘는 빚을 졌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시위 중 끼니는 빵과 우유, 상자 째 차에 싣고 다니는 컵라면으로 때운다. 고달프고 가슴이 찢어져도 그는 진실을 밝히는 게 아빠의 의무라고 믿는다. "남들에겐 장애아일지 몰라도 나에겐 누구보다 귀하고 사랑스러운 딸이다. 앞이 안 보이는 가냘픈 아이가 독방에서 혼자 죽은 이유를 모른다면 나는 정상적으로 살아갈 자격이 없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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