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지난 2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삼성X파일' 부실수사 논란에 대해 "도청 내용만으로는 부족해 다른 증거를 찾으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이어 "증거가 확보되면 기소했고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으면 하지 않았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필요한 사람은 다 조사했다"고 항변해 무사히 인사청문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황 장관이 삼성그룹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당시 그의 답변도 설득력이 떨어지게 됐다. 황 장관의 금품수수 의혹이 15년 전 일이라고 해도 논란은 현재형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2005년 7월 이상호 당시 MBC 기자가 옛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도청 내용을 담은 테이프를 입수해 삼성그룹과 정치권, 검사들 간의 관계를 폭로한 '삼성X파일'사건은 사회 이목이 집중된 '빅 이슈'였다. 도청 내용에는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현 회장)과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장이 한 호텔에서 만나 특정 대통령 후보에 대한 자금 제공을 논의하고 떡값을 주며 관리해 온 검사들을 언급한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검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 5개월에 걸쳐 조사를 했다.
하지만 수사 결과를 두고 검찰 안팎에서는 부실수사 논란이 일었다. 황 장관은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로 사건을 지휘하면서 홍 회장과 이 전 부회장, 김인주 당시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사장 등 삼성 임원을 무혐의로 처리한 반면, 사건을 보도한 이상호 기자와 이른바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전 민주노동당 의원은 통신보호비밀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게다가 삼성 관계자들은 출국금지는 물론이고, 소환조차 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도청 내용에 나온 비위 사실이 아니라 명단 공개와 같은 형식만 수사한 것""삼성을 봐주기 위한 편파 수사"라는 비판 여론이 뜨거웠다.
당시만 해도 황 장관에 대한 비판은 '자기 식구 감싸기'에 급급했다는 데 집중됐다. 그러나 그 역시 삼성에서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황 장관이 삼성의 관리 대상이어서 삼성 관련 수사에 소극적이었던 것 아니냐는 혐의가 더해지게 됐다.
특히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태 이후 황 장관에 대한 검찰 내부의 불신이 깊어지고 있는 점도 황 장관의 입지를 줄이고 있다. 황 장관은 올해 검찰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 당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지 말라"고 채 전 총장에게 압박을 가한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채 전 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이 불거지자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감찰을 지시해 채 총장의 사퇴를 유도했다. 검찰 관계자는 "황 장관이 청와대의 의지에 따라 검찰의 독립성을 훼손했다는 말이 많고, 앞으로 여러 사건의 수사 결과를 내놓을 때 신뢰성에 타격을 받을 것 같아 걱정이다"고 말했다.
이번 금품수수 의혹과 관련해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검찰 내부에서는 "옛날 일이라고 하고 사실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번 의혹도 채 총장을 사실상 사퇴시킨 감찰 지시를 내리며 든 이유와 크게 다를 것이 없지 않나", "같은 잣대라면 장관 역시 물러나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나오고 있다.
더구나 민주당이 최근 "검찰총장 찍어내기 공작에 모르쇠로 일관했고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한 청와대 외압에 침묵했다"며 황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제출하기로 결의해 파장은 정치권으로도 확산될 전망이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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