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이야기다. 비단 한양대만의 문제겠느냐." 박문일 전 한양대 의과대학장의 아들이 표절 논문으로 한양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다는 의혹보도를 접한 한 의대생의 말이다. 이미 대학 교수, 국회의원 등 소위 '힘 있는 집' 자녀들이 의학 또는 법학전문대학원에 편하게 들어간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떠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무색해진, 희망 사다리가 무너진 우리사회에 대한 냉소다.
한양대 의전원 사건은 입시 부정과 연구윤리 위반에 둔감한 사회 분위기를 종합적으로 보여줬다. 박 전 학장의 아들이 서류전형에 제출한 논문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2년 전 입학 당시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보직 교수가 자신이 지도한 타인의 박사학위 논문을 베껴 아들을 제1저자로 앉힌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대학에서는 진위를 확인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다. 지난 8월 26일 총장이 인지해 감사를 시작하기 전까지 누구 하나 앞장서서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연구윤리에 대한 불감증은 '알면서도 쉬쉬'하는 소속 교수와 학생들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 대학의 한 교수는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면 그냥 묻혔을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다.
이번 사건으로 연구윤리 점검 시스템 전반을 손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학 고위직에 있는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표절한 논문을 이용해 입시 부정까지 저지를 수 있는 가능성을 차제에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국립대 교수는 "이런 일이 발생하면 외부 감사까지 동원해 의혹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면서 "교육부 등 관계기관도 일벌백계 하겠다는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에서도 기관윤리심사위원회(IRB) 등 기구를 활용,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상시 검증 시스템을 운영해야 한다. "IRB가 논문 표절까지 살펴보기에는 인력이 부족하고 교수들이 너무 바쁘다"는 일부 대학의 해명은 궁색하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이 할 말은 더더욱 아니다.
박 전 학장은 기자에게 "오이 밭에서 신발 끈 고쳐 맨 것이 실수"라고 말했다. 어쩌다 저지른 실수로 자신이 교수직에서 물러나고 아들이 자퇴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자책한다면 오산이다. 문제의 본질은 그의 비위를 차단하지 못한 시스템에 있다.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사이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다른 누군가가 부당하게 의전원 입시에서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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