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당국이 산에서 길을 잃은 시민의 구조 요청을 외면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비난을 사고 있다. 이 시민은 경찰에 의해 구조됐다.
주부 김모(57)씨는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강동구 고덕산에서 도토리를 줍다 길을 잃었다. 1시간 남짓 산속을 헤매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발목을 접질렸다. 날이 어두워지고 비까지 내려 제대로 걷기 힘든 상황이었다. 홀로 낯선 산속 어둠에 갇힌 김씨는 휴대폰으로 119에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구조대는 출동하지 않았다.
이날 서울종합방제센터 상황실 근무자는 오후 6시 56분 김씨와 30초 이상 통화했지만 관할 소방서에 신고 내용을 전달하지 않았다. 근무자는 "다리가 많이 아프다. 집에 데려다 달라"는 김씨에게 "병원으로 갈 만한 상태가 아니면 출동이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수년 전 사고를 당해 방에 누운 채 거동을 하지 못하는 남편이 걱정이었다. 근무자는 그런 김씨에게 경찰에 도움을 받으라는 안내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김씨는 다시 112에 전화했고 3분 뒤 인근을 순찰하던 강동경찰서 강일지구대 경찰들이 출동, 김씨를 암사동 집에 데려다 줬다. 김상민(30) 순경은 "당시 김씨가 미사리 방향 올림픽대로로 힘겹게 걸어 나오고 있었다"며 "차량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어 추가 사고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경찰관들이 저를 발견하지 못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덕분에 남편이 좋아하는 도토리묵을 해줄 수 있었다"며 울먹였다.
소방당국은 김씨의 구조를 경찰에 떠넘긴 것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서울종합방제센터 상황실 관계자는 "병원으로 갈 만큼 심각한 상황이 아니면 119구조ㆍ구급에 관한 법률에 따라 거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조항에는 '구급대원은 구급 대상자의 증상과 주변 상황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응급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서울의 한 소방서 구조팀장도 "이런 경우 현장에 출동해 구급 요청자의 상태를 살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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