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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10월 4일] '뻘짓'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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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10월 4일] '뻘짓'이 필요해

입력
2013.10.0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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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다른 이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계산할 수 없는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그것과 동행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존 버거가 한 이 말은 드로잉의 매력을 일순간에 정의한다. 그가 드로잉을 곁들여 글을 쓴 이란 책을 읽다가, 오래 전에 잊고 있었던 열망 하나를 기억해냈다. 그래, 오래 전에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었다.

대학시절 서클 수련모임을 갔을 때, 미술학과에 다니던 친구가 크로키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부뚜막 앞에서 불을 때고 있는 촌로의 모습을 불쏘시개로 쓰고 있던 종이상자 안쪽 면에 연필로 쓱쓱 그렸는데, 대상을 유심히 관찰하는 주의 깊은 시선이 아름다웠다. 손끝에서 낱낱의 선들이 한 무더기의 존재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고작 몇 개의 선이 순식간에 그려낸 종이 속 대상의 질량이 놀라웠다. 내 눈도 저처럼 고요히 정지된 시선을 닮을 수 있다면, 손끝에서 저런 창조가 일어날 수 있다면, 삶에서 마주치게 되는 어떤 인상적인 순간들을 저렇듯 붙잡아 둘 수 있다면, 하고 바래었다.

얼마 전 동네 인문학서점인 길담서원에서 드로잉수업을 진행하고 참여자를 모집한다기에, 머뭇대다가 결국 신청을 했다.

연필을 잡아 본 것이 얼마만인지. 새삼 사각사각 연필 깎는 소리도 듣기 좋고, 금세 뾰족해지는 검은 흑연의 예각도 어여뻤다. 내 의도와 손의 미숙함이 연필심의 물리적 특성과 만나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동행하는'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매혹적이었다.

첫 숙제가, 삶에서 인상적인 것들 그려오기였다. 내 삶에서 인상적인 것이 무엇이었던가…. 어린 날, 강변에 자리한 외가마을에서 난간이 없는 다리를 걸을 때 느꼈던 최초의 공포의 기억. 먹거리가 귀하던 그 시절, 산에 나무하러 간 외할아버지가 지게에 매달고 와서 입안에 넣어 주던 새빨간 청미래 열매의 새콤 텁텁한 맛…. 수분 없는 그 맛처럼 가난했지만, 사랑 받고 있구나 느꺼웠던 그 느낌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또 외가 토방마루에 올라서서 멀리 어둠 속에 마을로 들어오는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바라보며 엄마를 기다렸던 그리움의 기억,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순간 같은 첫 죽음의 경험 등.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 삶에서 인상적이었던 이미지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물론 제대로 될 리가 만무했다. 선들은 유치했고 형태는 모호했다. 무엇보다, 숙제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삶에서 인상적인 것들'이란 말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거기서 '삶'은, 생애가 아니라 일상이었다. 다른 이들은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그려왔고, 포도송이와 안경집을 그려왔는데…. 그러나, 내 삶을 주의 깊게 되돌아봄으로써 잊고 지내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낸 점은 '바라봄으로써 더 가까이 가게 된다'는 드로잉의 특질과 일치했다.

물론 이후로는 숙제의 본디 말뜻을 알아듣고, 나날의 일상에서 인상적인 것들을 그리고 있다. 비를 맞히려고 마당에 내놓은 화분들일 때도 있고, 식탁 위에 놓인 마른 북어 한 마리일 때도 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오래 깊이 바라보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전에 없이 그 대상과 가까워지는, 세상과의 헐거운 거리감이 좁혀지는 느낌마저 든다.

그림이 의도대로 그려지지 않을 때는, 왜 이런 뻘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뻘짓이야말로, 쳇바퀴 같은 일상을 혹은 스스로를 환기시켜 주는 행위일 것이다. 오랫동안 너무 소용에만 집착하고, 무용하다 싶은 일들은 무시해왔다. 어쩌면 그동안 무심히 밀쳐둔 것들 속에 진짜 소중한 어떤 것이, 놓치지 말아야 할 어떤 것이 담겨있는 것은 아닐지. 이 말을, 존 버거는 이처럼 아름다운 문장으로 써두었다.

"드로잉을 할 때 나는, 하늘 길을 찾아가는 새나, 쫓기는 와중에 은신처를 찾아가는 산토끼, 혹은 알 낳을 곳을 알고 있는 물고기, 빛을 향해 자라는 나무, 자신들만의 방을 짓는 벌들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을 받는다"라고. 물론 그 옆에, 하늘 길을 찾아다닐 당시에는 근사한 바람칼이었을 한 새의 깃털 드로잉과 함께.

박미경 갤러리 류가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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