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0년 12월 대법원에서 유신헌법 당시 공포된 긴급조치 1호가 위헌이라고 판결한 이후로 헌법재판소에서도 긴급조치의 위헌성을 확인하는 결정을 내렸다. 또 연이어 대법원에 의해 긴급조치 2호, 4호, 9호에 대해서도 위헌결정이 내려졌다. 그에 따라 현재까지 유신시대에 긴급조치에 의해 유죄판결을 선고 받은 1,140명이 법원에 재심을 청구해놓은 상태이고, 줄지어 무죄선고를 받고 있다. 최근 내가 변론한 재심사건들도 속속들이 무죄선고를 받고 있는 중이다. "뒤늦게나마 법원의 무죄선고가 피고인들과 가족들의 절망과 아픔에 대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 피고인들의 헌신이 민주주의의 기틀이 되었다"는 재판부의 말이 나의 재심 청구인들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긴급조치는 1972년 공포된 유신헌법에 의하여 국가의 안전보장이나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을 경우에 대통령이 국정 전반에 걸쳐서 필요한 긴급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권한 및 그에 따른 조치를 말한다. 이에 의하여 대통령은 헌법상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고,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도 긴급조치를 할 수 있고, 이러한 긴급조치는 법원의 사법심사의 대상도 되지 않았다. 유신헌법에 근거하여 9차례에 걸쳐 긴급조치가 발포되었는데 긴급조치 해제․민생조치의 내용을 담은 3호, 5호, 6호, 8호 외에 1호, 4호, 7호, 9호는 정부와 유신헌법․긴급조치를 반대 또는 비방하거나 유신헌법 개정 제안만해도 영장 없이 체포․구속되어 처벌되고 대학을 휴교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는 법치주의와 3권 분립의 원칙, 기본권 보장의 원칙, 영장주의 원칙 등에 반하는 위헌적인 조치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헌적인 긴급조치에 기해 수 천명의 사람들이 기소되었고, 당시 법원은 대부분 사건에서 검찰의 구형대로 판결을 선고하였다.
긴급조치 재심사건 중 대법원에서 처음으로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오종상 씨 사건의 경우에 버스를 타고 가다가 고위층들은 하지 않으면서 서민들에게만 장려하는 정부의 분식장려정책을 비판하는 얘기를 학생들과 나눴다는 이유로 긴급조치 위반죄로 징역 3년을 복역하였다. 내가 대리했던 재심 청구인들도 유신정권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고, 유인물을 대학에서 배포하려 했다는 이유로 또한 징역형을 살았다. 긴급조치위반 전과자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이들은 학교에서 제적을 당하였고, 정상적으로 취업을 할 수가 없어 반강제로 외국으로 이주하거나 막노동이나 허드렛일을 전전하였으며, 그로 인해 암을 얻어 평생을 고생하였다.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켜주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정부를 비판하면 전부 빨갱이로 몰아 탄압하여 개인의 삶을 철저히 망가뜨리고 짓밟은 것이다. 이러한 유신정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신의 심복에 의해 살해됨으로써 비극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2013년 최고사법기관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권위주의 시대 야만의 산물인 긴급조치에 대해 종언을 고하였다. 이러한 누를 다시 범하지 않으려면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 진실을 밝히고, 피해자들에 대해 공적인 사죄 및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다시는 위헌적인 조치로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하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시켜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 보장 및 복지 증진을 통해, 자유로운 정부 비판과 권력감시를 통해, 개인의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에 의해, 권력집중이 아닌 권력 분립 및 상호견제를 통해, 철저한 영장주의 원칙에 의해 성장ㆍ발전한다.
건강이 안 좋으신 나의 의뢰인 한 분은 얼마 전 긴급조치 재심사건에서 무죄선고를 받고 법원을 나서는 날, 평생을 짓눌러온 긴급조치라는 형틀을 벗어 한층 밝아 보이셨다. 건강이 악화되어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낙향하시기로 하였는데 귀농 수업도 열심히 받으시고 집도 새로 짓는 등 귀농을 단단히 준비하신 듯하다. 부디 그분의 앞날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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