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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무등경기장 역사 속으로

입력
2013.10.0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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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타이거즈와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의 홈구장인 광주 무등경기장이 한국 프로야구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기아 타이거즈는 4일 무등경기장에서 넥센 히어로즈 전을 마지막 경기로 32년간 프로야구 시대의 막을 내린다.

내년부터 기아 타이거즈의 홈경기는 올 연말 완공될 광주 챔피언스 필드에서 치러지게 된다.

타이거즈 홈 구장, 총 1,030만명 관중 찾아

광주 북구 임동에 자리 잡은 무등경기장은 1965년 광주에서 열린 제48회 전국체전을 대비해 건설됐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부터 해태와 현재 기아 홈구장으로 쓰였다. 펜스 길이는 좌우 각각 97m, 가운데 118m이다. 특히 가운데 펜스 막음판이 6.9m로 높아 미국 보스턴의 '그린 몬스터'에 비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시설이 낡고 오래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과 함께 한국 프로야구 리그가 벌어지는 경기장 중 가장 낙후된 구장으로 오명을 썼다. 2007년 보수작업 전까지 낡은 인조잔디 탓에 부상이 잦아 선수들의 무덤으로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26만1,182명의 관중이 찾았고 2011년에는 59만2,653명이 입장해 역대 최다 관중 수를 기록했다. 그러나 올해는 홈팀인 KIA의 성적 부진으로 45만6,184명에 그쳤다. 32년 동안 야구장은 총 1,030만1,631명의 관중이 찾았다.

광주와 타이거즈의 추억

무등경기장은 김봉연 김성한 선동렬 이종범 등 한국 야구사의 획을 그은 스타의 산실이었다. 구단의 재정지원이 상대적으로 열악했던 해태 시절 연이은 선전은 광주시민들에게 정치적 설움을 달래고 위안을 주기도 했다. 1990년대 야구장에서 '김대중'을 연호는 관중의 모습은 해태의 오랜 팬이라면 누구나 떠올리는 장면이다. 1980년 5월 군부를 규탄하는 수많은 택시와 버스가 경적을 울리며 도청으로 향한 출발점이기도 했다. 프로야구 출범 이듬해인 1983년 해태가 프로야구 정규시즌 1위와 한국시리즈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자 광주 시민의 한과 울분을 폭발시키는 장소로 부상했다.

아듀 무등경기장 야구장 행사 다채

기아는 4일 올 시즌 마지막 경기인 넥센전에서 무등야구장 시대를 마감하는 다양한 이벤트를 펼친다. '무등야구장, 그 역사의 현장에 타이거즈가 함께합니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최종전 기념 행사는 32년 동안 팬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마련됐다. 선수단은 땀과 투혼, 감동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의미로 유니폼에 '기억할게! 우리의 무등'이라는 글귀를 달고 경기에 나선다. 선수 사인회와 경기 종료 후 팬들에게 그라운드를 개방해 무등야구장의 추억을 되새길 예정이다. 무등경기장 마지막 입장권을 기념하기 위해 넥센전 티켓을 별도 제작한다. 입장권 1매를 증정하는'1+1'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그동안 지정좌석제로 운영하던 1·3루를 자유석으로 운영한다. 이날 시구는 타이거즈 원년 팬인 박질선(77)씨가 한다.

김종구기자 so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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