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급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잔기술 많아… 제일 잘하는 것 하나 딱히 고르기 어려워기본은 들배지기… 잡아당겨야 경기 주도부상 복귀한 이슬기와는 문자 주고받는 사이… 강호동 선배! 예능프로에 한번 불러주세요
정경진(26ㆍ창원시청)은 올해 모래판에서 가장 뜨거운 사나이다. 보은대회와 청양단오대회 그리고 추석대회에서 연거푸 백두장사(150㎏ 이하)에 올랐다. 통산 4번째 우승. 지금 기세라면 오는 11월 서산에서 열릴 천하장사 씨름대축제마저 석권할 기세다.
정경진은 "올 시즌 몸 컨디션이 좋고, 마음도 편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나친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번지는 것만큼은 철저히 경계했다. "항상 나 자신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다"면서 "자신감이 너무 앞서면 무리하게 공격을 들어가다가 자칫 경기를 그르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 시절까지 한라급(110㎏ 이하) 최강자였던 정경진은 188㎝의 큰 키와 유연한 몸놀림으로 '제2의 이만기'라는 칭호를 얻었다. 2009년 실업 팀인 창원시청 입단과 함께 한라급에서 백두급으로 체급을 끌어 올려 힘과 체력 열세를 극복하고 4년 만에 최고 자리에 우뚝 섰다. 정경진은 "한라장사 열 번 하는 것보다 천하장사 한 번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으로 체급을 올렸다"며 "최종 목표인 천하장사를 위해 열심히 달려가겠다"고 밝혔다.
"2년 동안 190㎏에 달하는 파트너만 들었다"
정경진은 한라급으로 뛸 당시 105㎏의 몸무게를 체급을 올리면서 30㎏가량 찌웠다. 갑자기 불어난 몸무게에 몸이 적응을 못했다. "살이 늘어나 허리에 무리가 왔다. 어느 날은 훈련하고 난 다음 너무 아파서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다. 그 때 백두급으로 올린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이승삼 창원시청 감독은 2009년 정경진을 데려오면서 "3년 내 장사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정경진은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스승을 믿고 따랐다. 첫 결실이 마침내 이뤄졌다. 2011년 6월 단오대회에서 처음으로 백두장사 꽃가마를 탔다.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인 것 같다. 2년의 적응 기간이 끝나니까 한결 나아졌다. 훈련할 때 2년간 190㎏에 달하는 소속팀 동료를 파트너로 삼아 계속 들다 보니 자신 있게 기술을 들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처음엔 막막하고,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강했는데 지더라도 '과감히 들어보자'라고 생각을 바꾼 것이 결국 지금의 정경진을 만들었다."
"백두급은 힘 씨름? 나만의 무기는 다양한 기술"
경량급은 기술 씨름을 하는 반면 중량급은 힘을 바탕으로 씨름을 한다. 정경진은 다른 중량급 선수들과 달리 경량급부터 시작해 여러 기술을 구사할 수 있다. 유연성과 빼어난 무게 중심 이동으로 등채기, 밭다리, 빗장걸이, 돌림배지기 등 상황마다 다양한 기술을 선보인다. 경기 스타일도 빠르고 다이나믹하다.
"한라급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보다 잔기술은 많은 편이다. 제일 잘하는 기술 하나를 딱히 고르기 어렵다. 단지 상대에 따라 다양한 기술을 시도한다. 이것이 나만의 무기다. 씨름뿐만 아니라 모든 운동은 한 끗 차이다. 순간의 상황 대처 능력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정경진이 후배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씨름의 기본은 들배지기다. 그래서 훈련할 때 '무조건 상대를 잡아당겨라'고 후배들한테 말한다. 잡아당겨야 경기를 주도한다. 또 들배지기 말고도 다른 기술들을 시도할 수 있다. 상대를 놓아버리면 그 버릇이 생겨 실제 경기에서도 그냥 놓아버린다."
"대학 선ㆍ후배 이슬기와 동반 성장할 수 있었으면"
정경진은 이슬기(26ㆍ현대삼호중공업)와 절친한 사이다. 나이는 같지만 이슬기가 생일이 빠르다. 그래서 인제대 1년 선ㆍ후배가 됐다. 이슬기는 지난 2년간 전성기를 누리다 2012년 추석대회 출전을 앞두고 훈련하던 중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중상으로 잠시 모래판을 떠났다.
올해 추석대회에서 복귀전을 치른 이슬기는 공교롭게도 준결승에서 정경진과 맞붙었다. 결과는 정경진의 2-1 승리. 1-1로 맞선 세 번째 판에서 두 번의 연장 끝에 승부가 갈릴 정도로 치열했다. "서로를 워낙 잘 안다. (이)슬기가 1년 만에 돌아왔는데 또 다칠까 봐 걱정도 했다. 차라리 (윤)정수 형이 올라왔으면 마음이 좀 편했을 텐데. 1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도 실력은 여전했다. 대회 후 '다음에는 더 재미있게 하자"며 문자를 주고 받았다."
씨름계는 스타 부재에 시달리고 있다. 씨름의 부흥기를 맞이하기 위한 차세대 주자로 정경진과 이슬기가 꼽힌다. "솔직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부담스럽다. 주위에서 나와 슬기를 주목하는데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 서로 동반 성장하면서 씨름 인기를 되살리는 토대를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즘 강호동 선배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우리 동네 예체능'이 인기 있던데 씨름 종목을 한번 했으면 좋겠다."
김지섭기자 on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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