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는 '사초 실종' 논란을 도리어 부추기고 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대화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수사 결과에 방점을 두고 친노 진영을 향해 "사초 폐기는 국기 문란"이라고 공세를 폈다. 반면 민주당과 친노 진영은 '봉하 이지원'에서 대화록이 발견된 점을 지목하며 "대화록 존재가 입증됐다"며 실종 사건 자체를 부인했다. 여야가 같은 수사 결과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또다시 '프레임 전쟁'이 불거지는 양상이다.
청와대·새누리 "사초 폐기는 국기 문란"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2일 2007년 남북정상회담대화록이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검찰 발표에 대해 '사초 파기''국기 문란'이라며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 등 친노 진영에 총공세를 취했다. 기초연금 공약축소, 채동욱 검찰총장 사태 청와대 개입설 등 그 동안 야당 공세에 시달리던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때마침 터진 반격 호재에 일제히 민주당의 사과와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사초 실종은 국기 문란이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검찰의 조사를 지켜보겠다. 이런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가 이전 정권의 일을 들어 '국기 문란'을 운운하며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새누리당도 당 대변인과 원내 대변인이 무려 4차례나 브리핑을 갖고 "대화록이 언제 누구에 의해 무슨 이유로 어떻게 사라졌는지 명백히 밝혀야 한다"며 거들었다. 유일호 당 대변인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국가기록원의 대화록 부존 경위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국가기록원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검색에 참여했던 새누리당 열람위원(황진하, 김진태, 조명철, 심윤조, 김성찬)들도 기다렸다는 듯 국회 기자회견을 열고 공세에 가담했다. 당시 열람위원장이었던 황 의원은 "굴욕적인 회담 결과가 역사자료로 보관되는 것이 두려워 대화록을 삭제한 것"이라며 공격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의원에게도 집중 포화를 쏟아 냈다. 황 의원은 "문 의원은 '대화록을 분명히 기록원에 이관시켰고 NLL 포기 발언이 나오면 정치를 그만 두겠다'고도 했다"며 "관련 인사들은 역사적, 법적,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총공세는 최근 복지 문제가 이슈화되며 주춤했던 국정흐름의 주도권을 대화록 문제를 계기로 다시 잡겠다는 속내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친노 "수정본 확인… 실종 아닌 셈"
노무현재단 등 친노진영은 2일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봉하 이지원에서 최종본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확인된만큼 더 이상 사초 실종이란 주장의 근거는 없어진 것"이라며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하지만 대화록 전면 공개를 주장했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과 친노진영은 상당히 곤혹스런 입장에 처하게 됐다.
노무현재단은 이날 성명을 내고 "검찰 발표를 요약하면 대화록을 발견했다는 것으로 대화록이 당시 청와대 이지원과 국정원에 모두 남겨졌음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비록 대화록이 봉하 이지원에서 발견됐지만, 대화록을 2부 작성해 1부는 청와대(이지원 원본)에 다른 1부는 국정원에 보관하게 했다는 참여정부 인사들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졌다는 것이다.
재단은 또 "검찰 발표에 따르면 초안 상태에서 삭제된 것을 발견해 복구하고 수정된 최종본도 함께 발견했다고 한다"며 "최종본이 만들어지면 초안은 삭제되는 것이 당연한데 검찰이 삭제, 복구 등의 표현으로 의혹의 대상으로 몰아가는 정략적 행태는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재단은 "(봉하)이지원에 남아있는 대화록이 대통령기록관엔 왜 존재하지 않는지를 지금부터 확인하고 규명하면 될 일"이라며 검찰로 공을 넘겼다.
민주당도 대화록의 존재가 입증됐다고 주장하면서 여권의 국면 전환을 위해 검찰이 서둘러 발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면서도 검찰의 갑작스런 발표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민주당은 전병헌 원내대표 등이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친노 인사들과 의견을 조율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했다.
대화록 정국의 당사자인 문 의원은 "내용을 잘 모르니 알아보고 말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문 의원이 지난 6월 대화록 전면 공개를 주장하며 "NLL 포기 발언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정공법을 선택했던 만큼 '사초 실종'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문 의원이 대화록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지 않은 사실을 몰랐다는 점에 대해서는 유감 표명이라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