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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10월 3일] 달팽이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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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10월 3일] 달팽이 공화국

입력
2013.10.0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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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를 보면 뭐 이런 세상이 있나 싶다. 충격과 공포를 넘어서 쉽게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뉴스의 머릿글만 읽어도 정말 요지경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정보가 진짜 정보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치고 있다. 거시사의 입장으로 이 시기를 연구한다면 연구에 쓸 질료가 아마 넘쳐날 것이다. 하지만 왕이 바뀌어도 민중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듯, 이런 문제들은 늘 있어왔다. 제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물이 들어왔다가 나간 것처럼 그렇게 잊히고 말았다. 언제나 문제를 덮는 더 큰 문제들이 나타났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휘몰아치는 사건, 사고들 속에서 사실 정말 우리의 목을 조이는 고난과 시련은 따로 있었다. 바로 가장 현실적인 문제, 돈과 집이다. 요즘 심심치 않게 전세난과 하우스 푸어란 말을 들을 수 있다.

몇 년 전 결혼을 한 선배와 친구들 거의 대부분이 요즘 오른 전세값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보통 2년 계약 종료가 끝나는 시점에 집주인이 그들에게 제시한 전세금 인상폭은 통상 2,000만원에서 많게는 4,000만원까지였다. 하지만 전세금 대출까지 끼고 전세를 얻은 그들에게 그건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이미 분가한 집에 손을 벌리거나 그마저 어렵다면 다른 대출을 알아보지 않고는 쉽게 구할 수 없는 돈이기 때문이다. 전세값을 올려주지 못하는 경우 집주인은 반전세라는 것을 권유한다. 반전세란 전세금을 그대로 두고 인상 폭 만큼을 월세로 내는 제도다. 대략 금액의 1%, 2,000만원이면 월 20만 원 정도의 월세를 부담해야 한다. 세입자들의 경우 대부분 울며 겨자 먹기로 반전세로 돌려 간신히 계약을 연장하지만 그렇게 했을 경우 대출이자를 포함에서 집에 들이는 돈만 한 달에 50만원 가량이다. 집을 가지고 있어도 떨어지는 집값과 각종 세금 때문에 제 살을 깎아 먹는 셈이고, 집이 없으면 없는 대로 수입의 큰 부분에 구멍이 나니 정말 집이라는 것 자체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현대인들은 무거운 집을 이고 꾸역꾸역 삶을 이어 나가는 달팽이와 다름없다.

정부에서는 몇 가지 하우스푸어와 전세난 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묻고 싶다. 현실적인 것은 전혀 안보이시는 거예요? 아니면 실제 적용자들의 처지를 생각 안하시는 거예요? 기껏 고심해서 만들어 줬더니 불평만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만드는 입장에서 쓰는 사람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물건을 어떻게 그냥 쓰라는 말인가. 제 아무리 파격적인 대책이 나와도 탈출구가 없어 보인다. 실패한 정책들을 약간 수정해서 붙여넣기 하는 식이니 통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이상하다. 나는 경제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실패의 요인을 경제적으로 분석할 수 없다. 다만 일반 시민의 입장으로 말 할 수는 있다. 나는 4·1 부동산 대책이 시행되고 그 약빨이 정말 놀라울 정도로 일찍 떨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주택거래를 위해 절세의 폭을 넓히고 세금을 낮춰도 정말 올라야 할 사람들의 집값은 오르지 않았고, 오히려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주변을 둘러봐도 정부의 대책으로 개선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하우스푸어 구제안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선을 긋는지 실제적으로 혜택을 볼 수 있는 주변 사람은 정말 드물다. 치솟는 전세값은 하락세는커녕 반전세라는 또 다른 월세 제도를 탄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몇몇 언론에서는 국민들에게 집을 사라고 광고하고 있다. 슬픈 일이다. 전세값을 잡지 못하고 전세자들의 규모를 줄여보려는 심산이다. 2000년대 초, 잠실을 중심으로 강남의 재건축 투기로 돈을 번 부자들이 털고 나간 시장의 거품이 빠지면서 애꿎은 서민들이 고통 받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희망을 가지고 대출 받아 집을 산 사람들은 고통 받고 있다. 집을 진 달팽이들이 힘겹게 천천히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대규모 공사로 경제의 활성화를 꿈꾸던 구시대적 발상을 접고, 정부는 이제 새로운 주거 대책 안을 발표해야 한다.

천정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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