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국이 정말 좋아요. 그런데 왜 일본과 사이가 자꾸 나빠지는 거죠. 마음이 무척 아파요. 양국관계가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데…."
지난달 21일 오전 일본 도쿄 중심의 히비야공원. 한일간 최대 규모의 문화교류 행사인 '축제 한마당'이 끝나갈 무렵, 귀빈석에 앉아 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는 목이 메인 듯 말문을 조금씩 흐렸다. 이내 눈시울이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그는 눈물을 왈칵 쏟으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흥겨운 축제에 걸맞지 않은 돌발 상황이었다. 옆자리에 앉아 손을 마주잡고 살갑게 얘기를 나누던 이병기 주일대사의 부인 심재령 여사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토닥였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 듯 애써 감정을 추스린 아키에 여사는 눈물을 훔쳤다.
한일관계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남편 아베 총리가 일본의 우경화를 진두 지휘하면서 주변국과 갈등이 고조되고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자 급기야 부인 아키에 여사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 양국 관계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출한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1일 "우경화로 비판 받는 총리의 부인으로서 행사 참석조차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라며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보이는 심정이 어떨지 이심전심으로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행사는 2005년 한일 국교 정상화 40주년 기념으로 시작돼 2009년부터 매년 서울과 도쿄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도쿄 행사에 현직 일본 총리의 부인이 참석한 것은 2009년 첫 행사 이후 두 번째다. 아키에 여사는 2006년 방한 당시 서울의 한 초등학교를 찾아 한글 교과서를 술술 읽을 정도로 오랜 한류 팬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일본측에서는 왕족인 다카마도노미야(高円宮) 비를 비롯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 공명당의 야마구치 나쓰오(山口那津男) 대표 등 주요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한일관계 개선을 바라는 무언의 메시지인 셈이다.
아키에 여사는 행사 후 페이스북에 짤막한 소회를 올렸다. "여러 가지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한국은) 이웃국가이므로 잘 지내고 싶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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