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선 전에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백설공주에 빗댄 풍자포스터 등 여야 대선후보의 포스터를 거리에 붙인 혐의로 기소된 팝아트 작가 이하(45)씨가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이범균)는 "이씨가 제작한 두 가지 벽보 모두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ㆍ추천, 반대를 명시적 표현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배심원들의 판단을 존중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이날 2시간 30분에 걸쳐 열띤 토론을 벌인 배심원들은 박 후보 포스터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8명이 무죄, 1명이 찬성 의견을, 문ㆍ안 후보 포스터에 대해서는 5명이 무죄, 4명이 유죄의견을 밝혔다.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과 반대로) 이씨의 포스터가 박 후보를 지지하고 문ㆍ안 후보 비방을 한 것으로 해석될 소지도 있다"며 "해당 포스터는 중의적 해석이 가능한 예술적 창장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이씨가 그린 포스터 어디에도 특정 후보를 비방하거나 지지하는 명시적 표현이 담겨 있지 않다"며 "이씨가 예전부터 거리미술가로 활동하며 여러 정치인에 대한 풍자 삽화를 그려온 점 등을 고려할 때 선거에 영향을 미칠 의도도 없었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대선을 앞둔 지난해 6월과 11월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여야 대선 후보들을 풍자한 포스터를 부산과 서울, 광주 등지에 부착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됐다.
박 후보 패러디 포스터는 그가 백설공주 차림으로 박정희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사과를 든 채 청와대 잔디밭에 앉아 있는 모습을 담은 것. 이씨는 새누리당이 대선후보 경선 룰을 확정하고 박 후보가 캠프 구성에 나섰을 무렵인 지난해 6월 28일 이 포스터 200여장을 부산 동구 부산진역 부근 버스정류장 등에 붙였다.
부산시선관위 등으로부터 고발 당한 이씨는 검찰 조사에서 "다시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서울 여의도와 종로, 신촌 및 광주 동구 아시아문화전당 건설현장 외벽에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에 대한 바람을 담은 포스터 500여장을 붙여 해당 지역 선관위로부터 재차 고발당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에 영향을 미칠 의도로 특정 정당 또는 후보에 대한 찬반 벽보 등을 게재해서는 안 된다.
이씨는 "당시 대부분의 시민의식이 최대 이슈인 선거를 통해 반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직업 및 예술세계, 인생에 대한 신념으로 (다시) 작업했다"며 "정치적 신념과 관계 없이 그림으로 봐 달라. 예쁘게 잘 그리지 않았냐"며 배심원들에게 호소했다. 반면 검찰은 "이씨가 당시 일각에서 '수첩공주' '유신공주'라고 불렸던 박 후보를 공주로 빗대 그렸고 유신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및 박정희 대통령의 역사적 과오를 '독 사과'로 표현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문ㆍ안 후보 포스터를 부착한 후에는 단일화를 바란다는 취지의 언론 인터뷰를 했다"며 이씨가 명백히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ㆍ반대 의사를 밝혔음을 지적,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다.
이씨는 무죄가 선고되자 "기쁘기도 하지만 받지 말았어야 할 재판을 받게 된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씨는 이 사건과 별개로 지난해 5월 17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주택가 담장에 '추징금 미납' 풍자 포스터 50여장을 붙인 혐의(경범죄처벌법위반)로 기소돼 10일로 예정된 서울서부지법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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