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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없이 세상과 싸운 지성인 손택, 닮고 싶어 만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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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없이 세상과 싸운 지성인 손택, 닮고 싶어 만든 작품"

입력
2013.10.0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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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손택의 실존적 고민·학문적 질문영상 속 실제 손택이 해답 제시비디오 영상 편집해 현실적 대화 연출1인극을 역동적 볼거리로 빚어내미국 현대 하이테크 퍼포먼스의 정수"손택이 누구인지 모르고 보더라도 정체성 찾기 위한 투쟁 발견할 것"

"이들의 출현으로 모든 멀티미디어 연극은 구석기 유물이 되어 버렸다."

2008년 뉴욕타임스가 내놓은 리뷰는 뉴욕의 오프브로드웨이 연극단 '빌더스 어소시에이션'을 설명하는 가장 단적인 정의가 됐다. 1994년 창단 후 비디오 영상, 이미지, 사운드 등을 폭넓게 활용하는 미국 현대 하이테크 퍼포먼스의 정석을 만들어 온 빌더스 어소시에이션이 제13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ㆍ2일~26일) 초청으로 내한했다.

빌더스 어소시에이션이 국내 초연하는 이번 작품은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라 불리는 작가 수전 손택(1933~2004)의 삶을 그린 '손택:다시 태어나다'이다. 서울 대학로예술극장(3~5일)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은 손택이 열네 살부터 써온 일기를 토대로 한 자서전을 각색한 것으로 빌더스 어소시에이션을 창단한 마리안 윔즈(53) 예술감독이 연출했다. 비디오 영상 속 생전의 손택과 함께 극을 이끌어가는 젊은 손택은 극단 '파이브 레즈비언 브라더즈' 리더로 유명한 배우 모우 앵겔로스(52)가 연기한다. 앵겔로스는 이 작품의 각본도 맡았다. 윔즈와 앵겔로스를 30일 오전 서울 인사동에서 만났다.

"1992년 손택과 멀티미디어 퍼포먼스 작업을 할 기회가 있었다. 주변에 지적인 영향을 주고 논쟁을 즐기던 여성으로 기억한다. 두려움 없이 세상과 투쟁하는 사람이었다. 그를 닮고 싶다는 생각이 결실을 본 게 이번 작품이다."(윔즈)

열다섯에 시카고대학에 들어갈 정도로 조숙했던 손택은 스물다섯 살부터 여러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1960년대 '반문화'를 이끈 학자다. 극작가, 배우, 영화감독 등으로 활동하며 뉴욕 지성계의 여왕으로 살았던 그의 학문적 고민, 그리고 성적 정체성에 대한 내적 투쟁을 오롯이 담은 그릇이 그의 일기장이고 자서전이다. "내가 오십 넘게 살아오며 읽은 것보다 훨씬 많은 책을 탐독한 십대 손택의 일기에는 나는 누구인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등 인류 공통의 질문들이 담겨 있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늙은 손택이 영상을 통해 제시하는 과정을 극으로 되살렸다."(앵겔로스)

앵겔로스가 연기하는 젊은 손택과 영상 속 늙은 손택은 삶의 고민과 학문적 물음을 교환한다. 언뜻 보기에 따분한 1인극일 것 같지만, 관객의 오감은 지루할 틈이 없다. 사운드, 영상 디자이너 등 많은 미디어 스태프가 두 손택의 대화를 역동적인 볼거리로 빚는다. 멀티미디어를 잘 다루기로 정평이 난 빌더스 어소시에이션의 특기가 아낌 없이 녹아 있다. "영화를 보듯 관객은 무대 앞뒤 두 개의 스크린을 통해 펼쳐지는 아름다운 영상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영상에 등장하는 실제 손택이 어린 손택인 나를 내려다보며 주고받는 연기, 그리고 각종 사운드가 하모니를 이뤄내는 장면은 오케스트라의 앙상블과 같다. 특히 필름 편집자가 손택의 비디오 영상을 손질해 현실적인 대화로 살려낸 점이 압권이다."(앵겔로스)

'손택:다시 태어나다'에는 손택이 일기에서 언급했던 수많은 저작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손택이 십대 시절 특히 관심을 가졌던 앙드레 지드의 작품들, 서두를 여는 토마스 만의 소설들, 영국의 소설가로 주로 여성 문제를 다뤘던 조지 메레디스의 작품, 그레타 가르보의 영화 '그랜드 호텔'등 끝이 없다. SPAF측이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배포할 예정인 자료집에 소개된 저작만 100개를 넘을 정도다.

공연은 영어로 한다. 그 많은 내용을 한글 자막으로 처리해야 하는 제작진의 고민이 적지않다. 대사 전부를 자막 처리하는 게 불가능해 절반을 생략하려 했다가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70% 이상을 살렸다는 후문이다. "관객이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막 작업에 최선을 다했다. 뉘앙스를 한국어로 살려내는 데 집중했다. 텍스트가 많아서 걱정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디지털에 익숙한 한국인의 이해력을 믿는다."(윔즈)

지성인 손택의 삶을 보는 것 외에 무엇을 기대할지 물었다. 답은 기다렸다는 듯 돌아왔다. "뉴욕에서 공연할 때도 손택이 누구인지 모르고 온 사람이 많았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평범한 사람의 투쟁 일기를 읽는다고 생각해달라. 우리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메시지도 놓치지 말라."(윔즈, 앵겔로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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