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이 1일 고종황제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투구와 갑옷 등 조선 왕실 약탈 문화재를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했다. 조선왕실의궤 반환운동을 주도했던 시민단체 문화재제자리찾기는 이들 문화재가 불법적인 경로로 박물관에 넘어간 정황이 있다며 반환운동을 추진할 뜻을 밝혔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은 이날부터 동양관 5층에서 '조선시대의 미술'이라는 기획전시를 시작했다. 전시물 중에는 '용 봉황무늬 두정 갑옷과 투구'와 익선관(翼善冠ㆍ왕이나 세자가 평상복으로 정무를 볼 때 쓰던 관) 등 고종이 대한제국연호를 사용하던 시절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포함됐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자객들이 당시 방에서 들고 나온 소반인 '풍혈반(風穴盤)'도 전시됐다.
박물관측은 이들 전시품이 조선왕실의 것이라는 설명은 빼놓은 채 19세기 조선시대 물품으로 오구라컬렉션으로부터 기증받았다는 내용만 공개하고 있다. 오구라컬렉션은 일본인 사업가이자 문화재 수집가인 오구라 다케노스케(1870~1964년)가 소장한 1,040점의 문화재를 일컫는다. 그는 일제 강점기 남선합동전기회사를 운영하며 한반도전역에서 도굴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문화재를 무차별 수집한 인물로 알려졌다. 그가 사망한 뒤 오구라의 아들이 1982년 도쿄국립박물관에 컬렉션 전부를 기증했다. 일본에서 활동중인 문화재 전문가 이소령씨가 이 컬렉션에서 투구 등 3점 옆에 '이태왕(李太王ㆍ고종) 소용품(所用品)'이라는 글이 쓰여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한국에 알려졌다.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 스님은 이날 박물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박물관측이 조선 왕실 물품이라는 사실은 이미 인정했다"며 "시기로 미뤄 고종이 사용하던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대한제국 황사손 이원 대한황실문화원 총재도 앞서 2월 5일 도쿄박물관을 방문, 이 사실을 확인했다. 혜문 스님은 "이들 물품이 조선 왕실의 것으로 판명됨에 따라 오구라가 당시 불법으로 한국에서 문화재를 밀반출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문화재 환수의 충분한 근거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도쿄국립박물관이 이들 문화재가 개인이 소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구라컬렉션으로부터 기증받았을 개연성도 있다"며 "이는 도난품 등을 기증받거나 구매하면 안된다는 국제박물관협의회(ICOM)의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물관측이 왕실 문화재를 소홀히 보관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상근 공동대표는 "갑옷을 장식하는 수달피 부분의 부식이 심해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몇 년 이내에 찢어지거나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며 "투구에서도 녹이 슬거나 장식품이 떨어지는 등 관리 부실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됐다"고 말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안민석 의원은 "박물관이 이들 문화재를 반입한 경위를 밝히도록 요구하는 국회 결의안 채택을 추진하겠다"며 일본의 성의있는 조사를 촉구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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