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표범을 본 적이 있다. 수족관에서 한 번. 동물원에서 서너 번. 수족관의 바다표범은 동물원의 바다표범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동물원의 철망이 일종의 감금장치라면 수족관의 유리는 삶의 조건이 달라지는 경계이기 때문일 테다. 이쪽 존재들은 공기 속에, 저쪽 존재들은 물 속에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결코 같은 세계를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바다표범은 물 속에서 주로 살지만 사람과 마찬가지로 포유류이며 폐로 숨을 쉰다. 그 육중한 몸통에 달린 것들을 지느러미라 해야 할지 손발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꼬리지느러미처럼 보이는 것은 확연히 둘로 갈라져 있다. 가만 살피면 사람의 다리 같다. 가슴지느러미로 보이는 것은 다섯 갈래의 뼈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의 손가락 같다. 그 애매한 것들로 바다표범은 빙글빙글 몸통을 돌려가며 헤엄치다가 유리벽 바깥의 나를 힐끗 도도하게 쳐다본다. 그쪽은 살 만하니? 묻는 것처럼. 그 표정을 보고야 이런 생각을 했다. 진짜 인어가 여기 있었구나.
안데르센의 인어는 상체가 인간이고 하체가 물고기다. 르네 마그리트의 인어는 상체가 물고기고 하체는 인간이다. 반반 잘라서 붙여놓았다. 하지만 먼 미래에 오염된 육지를 피해 해저도시가 건설된다면, 그곳엔 바다표범처럼 생긴 인어들이 살고 있지 않을까. 물속이라는 환경에 맞게 진화한 인간들 말이다. 수족관의 바다표범은 미래의 우리 모습일지도 모른다.
시인 신해욱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