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주말드라마 '스캔들'에서 주인공 하은중 형사(김재원)는 자신이 수사하는 재벌총수 장태하(박상민)와 부자지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큰 충격에 빠진다. 그는 외딴 섬으로 떠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낸다. 특이한 건 견디기 힘든 극심한 심적 갈등에 빠진 사람치고는 믿기 힘들 만큼 너무도 말끔한 아웃도어 의류를 차려 입고 텐트와 조리기구 등 완벽한 캠핑장비까지 갖췄다는 점. 사실 그의 의상은 슈퍼마켓을 갈 때도, 바다를 걸을 때도 아웃도어이고, 선물 역시 아웃도어 제품이다.
도무지 극중 전개와 어울리지 않는 아웃도어 의상과 소품이 등장하는 이유는 딱 하나, PPL(Product Placement·간접광고) 때문이다. 아웃도어 업체가 협찬한 드라마인 것이다.
SBS 일일드라마 '못난이주의보'에서는 여주인공 나도희(강소라)가 아웃도어업체 디자인 실장으로, 남주인공 공준수(임주환)은 디자이너로 나온다. 극중 무대가 아웃도어 업체이다 보니 방송 내내 아웃도어 로고와 제품이 등장한다. 남자 주인공은 신제품 개발을 명목으로 한 여름에 겨울 패딩을 입으면서 제품을 노출하고, 극중 신제품 발표회를 열며 제품의 기능과 디자인을 홍보한다. 드라마 내내 아웃도어가 등장하는 까닭, 이 또한 PPL 때문이다.
최근 드라마 PPL은 거의 아웃도어 일색이다. 어차피 드라마가 트렌드를 반영하는 이상 PPL도 그 시점에 가장 잘 나가는 제품이 자주 등장하는 건 당연한 일. 이런 점에서 소비재시장 '블루칩'인 아웃도어가 PPL을 석권하는 것도 크게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특정 제품이 이처럼 드라마를 도배하다시피 한 예는 보기 드물다. 드라마의 맥을 끊어놓을 만큼 아웃도어의 무리한 PPL 등장으로 시청자들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3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재 가장 자주 등장하는 PPL은 단연 아웃도어 제품이며 그 뒤를 휴대폰과 커피전문점이 잇고 있다. 특히 과거 PPL은 극중에 자주 노출되는 정도에 그쳤지만, 이젠 아예 기능까지 설명해주고 때론 극중 무대가 되기도 한다. 한 광고업계 관계자는 "아웃도어만 해도 과거 같으면 등장인물들이 자주 입고 나오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그 정도가 아니라 취미도 등산과 캠핑이어야 하고 의류뿐 아니라 신발도 등산화를 신어야 하며 선물도 아웃도어 제품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드라마 전개를 PPL 위주로 이끌어가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뜬금없는 설정과 대사도 등장한다.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는 주인공 차관우(윤상현)가 데이트를 하기 위해 선물을 사러 초콜릿 매장에 들어간다. 초콜릿만 사면 될 텐데 갑자기 이 장면에서 광고포스터가 등장하고, 심지어 "저희 생초콜릿은 차갑게 드셔야 맛있기 때문에 아이스 포장을 해드려요"라는 직원의 대사가 나온다.
PPL단가는 협찬, 로고노출여부, 제작지원 등으로 분류되며 평균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서울YMCA 시청자시민본부에 따르면 6월 기준 시청률 20위권 내 주요 드라마 12편의 평균 PPL수는 10개에 달했다. 과도한 PPL은 법적 제재를 받기도 하지만 TV는 부족한 제작비조달을 위해, 업체들은 제품홍보를 위해 노골적 노출을 마다치 않고 있다. 심지어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드라마 제작지원은 물론 직접 영화제작, 웹툰 PPL까지 나서고 있다.
PPL에 대한 규제정비와 함께, 좀 더 정교한 PPL전략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 업계 관계자는 "PPL은 시청자가 몰라야 효과가 있다. 만약 광고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잘된 PPL이라 할 수 없는 만큼 광고주도 제작자도 섬세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곽재성 방통위 지상파텔레비전심의팀 차장은 "지나친 지상파 방송 PPL의 심의사례들을 축적해 놓은 것들을 바탕으로 연말까지 심의규정 개정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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