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노령연금 등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내세웠던 복지 공약들이 최근 축소ㆍ후퇴하면서 정치인들의 '먹튀 공약' 논란이 또다시 제기되고 있다. 날로 국민의 복지 수요가 증가하면서 여야는 선거철마다 복지 공약을 경쟁적으로 확대하는 추세다. 문제는 정치권이 선거 승리에 집착한 나머지 재원 확보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는 데 있다.
정치권이 선심성 복지공약을 남발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선거에 대한 욕심 때문이다. 특히 지난 총선과 대선처럼 여야 간 선거전이 치열할수록 손 쉽게 표심(票心)을 잡는 방법으로 복지 공약을 남발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가 고령화ㆍ저출산 사회로 접어든 데다 시장에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 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복지 공약은 당장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손 쉽게 표를 얻는 방안으로 여기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심지어 "누가 먼저 복지 등 선심성 공약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달려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더구나 유권자들이 자신의 지갑을 여는 문제에는 민감하다 보니 여야 공히 재원 확보 방안은 소홀히 하고, 유권자들도 꼼꼼히 따지지 않고 넘어가기 일쑤다.
때문에 정치권의 공약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이행 여부를 감시하자는 주장이 줄기차게 나오지만 사회적 환경은 아직 미비한 상태다. 유성진 이화여대 스크랜튼학부 교수는 "공약에 대한 1차적 책임은 정당과 후보에게 있으나 규제 위주의 선거법 등이 공약 검증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당장 후보나 정당의 공약을 비교ㆍ평가를 통해 검증할 수 없도록 규정한 공직선거법이 장애물로 지적되고 있다. 공직선거법 108조의 2에 따르면 언론기관 등이 후보 등의 정책이나 공약을 비교ㆍ평가하거나 그 결과를 공표할 경우 점수를 부여하거나 순위ㆍ등급을 매겨 서열화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언론과 메니페스토(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따지고 당선 이후 공약을 지켜가도록 하는 시민운동) 활동이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와 관련, 중앙선관위는 지난 6월 언론기관 등이 공약에 대한 비교ㆍ평가 후 서열화한 결과를 발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여서 논의 여부가 주목된다.
정당의 정책 개발 역량이 미흡한 점도 공약(空約) 남발의 이유로 꼽힌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각각 여의도연구소와 민주정책연구원 등의 당내 연구소를 갖추고 있지만 정책 개발보다 외곽 선거조직 역할에 머무르고 있다. 당내에서도 정당 연구소를 낙선 정치인을 위한 자리로 여기는 분위기다. 더구나 여야는 인건비와 조직 운영비 명목으로 많은 돈을 사용하면서도 정책개발비로는 총 지출의 10% 미만의 비용을 사용, 중장기적 정책ㆍ공약 개발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당의 정책 개발 기능이 약하다 보니 대선 등 중요한 선거 때마다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야별 전문가들은 자신의 분야에 예산 배분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후보뿐 아니라 당내 정무적 판단을 담당하는 인사들이 재정 등을 포함한 거시적 관점에서 우선순위를 조율할 능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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