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80년대 말 전자제품 광고에 출연해 속삭이듯 깜찍한 목소리와 귀여운 외모로 뭇 남성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일약 스타로 떠오른 여인 최진실.
그녀는 이 카피 하나로 단숨에 CF 퀸에 등극했고 이후 연기자로 변신해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영하며 만인의 여인으로 사랑을 받았지만 화려함의 끝은 절망과 외로움이었다.
2008년 10월 2일 새벽 그녀는 "괴롭다"는 말과 함께 "아이들을 잘 부탁해"라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남긴 후 세상과 조용히 이별했다. 자택 안방 욕실에서 압박붕대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1964년 12월 24일 서울 불광동에서 태어난 최진실은 동명여중 재학시 고등학교에 다니던 선배 배우 강수연을 동경하며 연기자의 꿈을 키워왔다. 동생 최진영과는 의좋은 연기 파트너였고 나란히 KBS 공채 탤런트에 합격하기도 했다.
어렵게 생활하던 학창시절에는 수제비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많았고 집에 놀러 온 친구들에게 수제비를 만들어주는 일이 많아 '최수제비'라 불리기도 했지만 이때의 생활이 훗날 근검절약의 토대가 되었다. 경제적 궁핍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녀의 성격은 솔직함과 진솔한 매력으로 대중에게 다가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먼저 배우의 길에 들어선 동생 최진영의 소개로 광고계에 들어선 최진실은 CF를 통해 떠오르며 배우 생활을 시작했고 영화 '남부군'과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출연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서구적 미인이 활개치던 당시에 귀엽고 청순한 이미지의 그녀가 대형 스타로 발돋움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는 92년 TV드라마 '약속'에 이어 최수종과 호흡을 맞춘 '질투'를 통해 최고 시청률을 올리며 청춘 스타에 등극했고 연예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서 시구를 하는 영예도 누렸다.
이후 가수 변진섭과의 스캔들에 이어 94년, 전 매니저 배병수씨 살해 사건 증인으로 법정에 서며 구설에 올랐던 최진실은 2000년 5살 연하의 야구선수 조성민과 화려한 결혼식을 올린 뒤 두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행복은 여기까지였다. 성격차이로 불화를 겪다 4년 만에 결혼 생활을 깨고 싱글맘으로 돌아온 그녀는 두 자녀의 성을 최씨로 바꾸고 2005년 '장미빛 인생'의 맹순이 역으로 브라운관에 복귀해 녹슬지 않은 연기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동료 탤런트 안재환의 자살 여파는 그녀를 벼랑으로 내몰았다. 최진실이 그를 상대로 사채업을 했다는 루머가 결정적이었다. 결국 그녀는 2008년 10월 2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동생 최진영과 전 남편 조성민도 2010년과 올해 초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고 이제는 그녀의 두 자녀 '환희'와 '준희'만이 세상에 남겨졌다.
모쪼록 그 아이들은 부모의 슬픔을 잊고 밝은 모습으로 세상과 마주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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