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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10월 1일] 세상과의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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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10월 1일] 세상과의 불화

입력
2013.09.3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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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찾아간 의사가 말을 건넨다."아, 지난번에 추천해 주신 책, 정말 재미있었어요. >인가?"

"정말 재미있죠? 저도 그 책 한 권으로 니체를 이해했어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아니요. 잘 지냈으면 병원에 왜 왔겠어요? 요즘 영 좋지 않네요."

사실 요즘 난 세상과의 불화를 뼈저리게 확인중이다. 이곳은 내가 머물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나와 함께 머물고자 하는 사람도 썩 많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고 나 또한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을 훌훌 털고 떠나기에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온 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끊임없이 '당신 이 일 해야 해요.' 하고 수많은 일들이 비집고 나온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형국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끊임없이 나와의 불화를 조장한다.

'사색의 향기'와 '생색의 냄새'가 불화중이다. 사색하는 이는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괴롭기에 겸손해지고 조용하다. 그래서 이 귀한 사람들은 주위에서 찾기 힘들다. 그러나 생색을 내는 이들은 자신이 비치는 거울을 보며 자신만만하다. 그러기에 주위에 온통 그런 이들뿐이다. 목소리에 신념이 가득한 인간들로 가득한 회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처럼 괴로운 일도 드물다. 이제 그런 자리에 앉고 싶지 않다. 나가지 않는 사유를 설명하는 것도 구차하다. 확신에 찬 인간들 앞에서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무책임한 인간이 되는 길을 택한다.

'내 법'과 '법'이 불화중이다. 모두가 '법대로'를 외치는데 왜 기준은 다른 것일까? '法(법)'이란 글자를 배울 때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라고 했다. 그런데 왜 이 시대의 법을 구성하는 물은 거슬러 오르고, 흐르지 않고 고여 녹조를 만드는 것일까? 누군가 '법'을 들이대면 반대편은 '내 법'을 들이민다. 제4의 권력이라는 칼을 손에 든 언론은 또 어떤가? '법대로 나라를 다스리라!'고 온 나라를 위협하며 또 '내 법'을 들이민다. 결국 '내 법'을 갖지 못한 수많은 시민들만이 '법'대로 살아가야 한다. 한 나라의 법을 집행하던 이마저 '내 법'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철저히 난도질당하는 이 시대에 시민들의 삶이 어떠할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감투'와 '봉사'가 불화중이다. 봉사의 삶을 산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이 알고 보니 감투에 눈먼 사람이었음을 확인하는 과정은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을 안겨준다. 더욱 괴로운 일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너무 좁다는 것이다. 도망가려야 도망갈 곳이 없을 만큼 좁다. 그래서 감투에 눈먼 사람을 피할 수가 없다. 이런 삶을 지속하는 건 정말 힘들다. 이 사회에서 거짓된 웃음을 짓는 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참담하다. 그 속에 감추어진 감투의 탐욕과 힘에 대한 숭배, 권력의 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확인하지 못했으면 좋으련만. 그걸 확인한 채 사는 것은 견디기 힘들 만큼 괴롭다.

"정말 괴로우시겠어요."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마음을 이해하시겠어요? 천박하고 야비하고 우둔하고 오만하며 결정적으로 나를 향해 돌팔매질을 해댄다고 해도 이 나라, 문화, 이웃을 버리기가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어요!"

"삶이란 게 그런 거예요. 모순으로 가득 찬 게 현대의 삶이죠. 그러니 약 드시고 편히 지내세요. 그 길밖에 없어요."

"그렇죠? 열심히 먹을게요."

"안녕히 가세요. 힘내시고요."

약간의 힘을 내며 병원 문을 나선다. 그러나 다시 맞닥뜨린 세상은 변함이 없다. '불화'행 버스 외에 다른 노선은 없다. 버스에 오른다. "잔액이 부족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지만 조용하다.

김흥식 서해문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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