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씨가 추징금 납부 계획을 밝히고 훈장과 외교관 여권을 반납했다고 한다. 관광 여행도 그 여권으로 했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그런 특권으로 또 무엇이 있을까? 16년 동안 추징금을 걷지 않은 것도 그런 특권 인정 탓이었을까? 이런 식으로 전두환씨 문제가 해결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가 뿌린 씨앗 중에 아직도 튼튼하게 자라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소위 제3자 개입금지라고 하는 것도 그 하나다. 1980년부터 노동3권 행사에 노사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개입을 금지한 그 법이 1997년 개정되었지만 최근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려는 시도에서 보듯이 그것은 지금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전교조 조합원이 해고된 뒤 조합에 남아있어서 법외노조라는 것인데 이는 해고자를 제3자로 본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1999년 합법화된 전교조가 14년 만에 다시 법외노조가 될 처지에 놓여 있다. 1961년 박정희 씨에 의해 해산된 교원노조가 38년 만에 겨우 합법화되었는데 이제 다시 불법화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권 때도 없었던 일이 이제 막 터지려 하고 있다.
전교조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던 간에, 노조 조합원에 피해고자가 남아 있다고 해서 그 노조를 법외노조로 본다는 것은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희한한 것으로, 약자의 단결 강화라는 인간사의 원리는 물론 노동법의 원리에 어긋나고 노동에 반하여 부당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피해고자만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든 사적 결사인 노조에 가입하는 자유를 갖는 것은 세상의 모든 나라에서 인정되는 원칙인데 왜 우리는 아직도 이런 변칙의 법을 가지고 있는가? 그래서 국제노동기구를 비롯하여 세상의 모든 나라가 비판하고 있는데도 왜 정부는 꿈적도 하지 않고 있는가? 그래서 G20이나 OECD 국가 가운데 노조조직률이 최하인데도 국격 운운하는가? 노인복지든 유아복지든 복지 예산이 최하인 것도 마찬가지지만 노조조직률은 돈이 드는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인정 문제일 뿐이다.
해고된 근로자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아 온 소속 조합의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한 원칙이고 무엇보다도 그 소속 조합이 그 피해고자를 보호하고 지원하기 마련인 것도 원칙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피해고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라는 원칙은 1953년 노동조합법이 만들어질 때부터 가장 중요하고 확고한 원칙이다. 꼭 같은 규정을 두고 있는 일본 노동조합법에서는 물론이고(우리 법은 일본법을 그대로 베꼈다) 이 세상 모든 나라에서 인정하는 원칙이다. 노동법 학자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원칙이고 노동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인정하는 원칙이다. 아니 이 세상사람 누구나 인정할 원칙이다.
노동3권의 핵심 원칙은 노동조합의 자유다. 누구나 노동조합을 자유롭게 만들고 가입하여 활동하는 자유가 노동3권의 원칙이다. 그 가입이나 활동에는 헌법상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 그 어떤 제약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 원칙이란 국가안전보장이나 공공질서 같은 것인데, 수 만 명이 조합원인 조합에 피해고자 10여명이 있어서 국가안전보장이나 공공질서를 해친단 말인가? 지금 정부는 시행령 규정을 가지고 불법 운운하지만 그것은 그 위에 있는 헌법의 원칙을 위배한 것에 불과하다. 얼마 전 문제가 된 조합원의 정당 후원, 시국 선언, 일제고사 반대 등의 활동도 마찬가지다. 그런 활동을 이유로 한 해고를 법원은 부당하다고 판결했지만 그런 해고를 한 자 누구도 사과 한 마디 한 적이 없다. 노동조합 활동의 핵심인 단체교섭이나 단체행동을 제한하는 법률도 마찬가지다. 특히 단체행동을 거의 하지 못하도록 해놓고서 그것에 위배하면 엄청난 민형사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야만의 수준이다. 이런 반노동의 야만이 전두환적 특권의 야만과 동거하는 이 나라에 무슨 원리원칙이 있단 말인가? 그러면서 무슨 원칙, 국격, 외교, 세계화 따위를 운운한단 말인가?
박홍규 영남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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