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항명 사퇴 파문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의 용인술이 입길에 오르고 있다. 비단 진 장관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의 정책 브레인을 자임했던 인사 다수가 중간에 내쳐지거나 스스로 그만뒀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사람을 쓰는 제1원칙으로 신뢰를 꼽아왔다. 한번 일하면서 신뢰가 쌓인 사람에 대해 '자퇴는 있어도 퇴출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원칙은 박 대통령에게 쓴 소리를 하는 인사들에게는 예외규정이라는 지적이 많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을 맡으며 원조 친박으로 활약했던 경제통 유승민 의원의 경우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해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다 결국 박 대통령과 멀어졌다.
경제민주화의 원조라며 삼고초려 끝에 영입했던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대선 공약 전반을 총괄했지만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자취를 감췄다. 대선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의지 후퇴를 비판하는 등 반기를 든 것이 화근이었다. 박 대통령 주변에선 "참모가 소신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곧 배신"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2인자를 키우지 않는다'는 박 대통령의 분산형 용인술도 정책통의 연속성을 단절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박 대통령은 초대 내각 구성 당시 대선 이전부터 박 대통령과 공부모임을 함께하며 공약 만들기에 참여했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등 오래된 정책통을 배제했다. 정책 입안과 집행을 각각 다른 사람에게 맡겨 실세를 두지 않겠다는 의도에서다.
이 때문에 장관의 역할도 현장 중심적이기보다는 청와대가 주문하는 정책을 집행하는 데 한정돼 있다는 평가다.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지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청와대가 모든 정책을 틀어쥐고 좌지우지 하는 상황에서 정작 정책을 책임질 장관은 형해화될 수 밖에 없다"며 "자리만 원하는 사람이야 잠자코 앉아 시키는 대로 하겠지만 뜻을 가진 사람일수록 장관직에 회의를 느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양한 정책 조율 과정 자체를 가로막는 박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도 거론된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박 대통령은 정치 입문 이후 본인이 결정한 메시지를 내놓고 이에 따르는 대중들의 지지를 통해 세력을 키워왔다"며 "자신과 다른 생각을 절충하거나 합의점을 모색해나가는 정치력이 부족해 생각이 다른 참모라면 오래 견디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흡수하려는 노력 없이 배척하다 보니 박 대통령 눈 밖에 난 사람들은 떠날 수 밖에 없고 남아 있는 사람 역시 오로지 추종만 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진 대통령리더십 연구소장은 "박 대통령은 지금껏 어느 한쪽을 분명하게 선택한 후 상대가 수용할 때까지 단호하게 버티는 원칙의 리더십으로 위기상황을 헤쳐왔다"며 "제2의 진영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절충의 리더십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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