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도 학생인권조례를 신경 쓰기 시작하면서 과거라면 10번 이뤄지던 체벌이 이제는 2,3번 정도로 확실히 줄었어요. 하지만 체벌을 원래 심하게 하던 일부 선생님들은 여전히 개의치 않고, 인권조례에서 강제로 하는 것을 금하고 있는 방과후학교나 야간자율학습 등은 그대로라 아쉽습니다."(서울 A마이스터고 1학년 김모양)
두발ㆍ복장의 자유, 체벌 금지, 임신과 출산 및 성적 지향으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을 보장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여전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조례가 학생인권 신장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게 확인됐다. 조례가 시행되는 지역에서 체벌 억제 효과가 뚜렷했고 학교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학생 비율이 높았다.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와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는 전국 초ㆍ중ㆍ고 81개교 학생 2,921명을 대상으로 지난 8월 진행한 '전국 학생인권ㆍ생활 실태조사 결과'를 30일 공개했다. 인권조례 시행 이후 처음 실시된 전국 단위 조사다.
조사 결과 인권조례가 있는 광주ㆍ경기ㆍ서울 지역(7월부터 시행된 전북은 제외)에서 체벌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학생이 58.7%였던데 반해 인권조례 미시행 지역은 그 비율이 39.8%로 떨어졌다. 일주일에 1번 이상의 체벌이나 언어폭력을 경험한 학생도 인권조례 시행 지역 학생은 28.2%에 불과했지만 미시행 지역은 2배 가까운 49.8%였다.
인권조례를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흔히 학생인권과 교권을 상충하는 것으로 바라본다. 인권조례 때문에 학생지도가 힘들어지고 교권이 추락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설문에 참여한 학생 3명 중 2명(76.2%)은 '학생을 존중해주면 학생도 교사를 존중한다'고 답해 오히려 학생인권 보장으로 교권이 바로 설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인권을 제대로 보장하는 지역의 학생들일수록 학교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례를 시행하지 않는 지역의 학생들은 '학교에 있으면 숨이 막힌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이 광주ㆍ경기ㆍ서울 지역보다 각각 17.7, 13.5%포인트 더 나왔다. '학교는 학생을 차별한다', '학교 규칙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질문에도 시행 지역보다 2배 가까이 '그렇다'고 답했다. 학생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살려주는 혁신학교와 일반학교 간에도 조례 시행 지역과 미시행 지역 간 차이와 비슷한 결과를 냈다.
학교급별 체벌 경험은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많았다. 초등학교의 경우 대부분(75.4%)이 체벌을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고 응답했지만 중학교는 51.2%, 고등학교 36.9%로 떨어졌다. 조영선 전교조 학생인권국장은 "입시 경쟁이 심해지면서 '학생은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인권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퍼져 고교로 갈수록 체벌 등 인권침해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서울학생인권조례에 대해 교육부가 대법원에 조례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하는 등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이번 실태조사는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지적이다. 조 국장은 "조례가 시행되는 지역에서도 완전히 인권침해가 근절된 것은 아니지만 미시행 지역과 비교했을 때 인권조례가 확실히 인권을 보장하는 제도적 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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