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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5°/10월 1일] 시마 과장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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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5°/10월 1일] 시마 과장의 예언

입력
2013.09.3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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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가 히로카네 켄시가 그린 은 샐러리맨들의 교과서로 통한다. 파나소닉을 모델로 한 하츠시바라는 가상 기업에 다니는 주인공 시마 코사쿠의 이야기를 1983년부터 지금까지 30년째 연재하는 이 만화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잘 표현해 인기를 끌면서 TV드라마로도 제작됐다. 국내에서도 40여권이 넘는 시리즈가 번역 출간돼 인기가 높다.

인기 비결은 작가의 철저한 취재에 있다. 그는 하츠시바의 강력한 라이벌 '섬상'이라는 한국 기업을 다루기 위해 삼성에도 취재차 다녀갔다. 어느덧 사원에서 시작한 시마는 임원을 거쳐 올해 총수인 회장 자리에 올랐다. 시마가 위로 오를 수록 안목도 넓어지고 맡은 일도 늘어, 세계 시장을 놓고 벌이는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을 비교적 냉정하게 잘 짚어냈다는 평을 듣는다.

시리즈 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대목이 있다. 임원이 된 시마가 중국 시장을 맡게 됐다. 시마는 평소 중국을 그저 넓은 시장 정도로만 알았는데, 막상 맡고 보니 의외로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일본 기업들이 수십 년 갈고 닦은 기술력을 중국 기업들은 어떻게 단숨에 격차를 좁혔을까.

알고 보니 비결은 일본이 제공했다. 중국 기업들은 일본의 버블 경제가 꺼지면서 일자리를 잃거나 조기 퇴직한 직장인들을 대거 흡수했다. 결국 이들이 원동력이 돼서 중국은 일본 기업과 기술격차를 좁힐 수 있었다.

이를 보고 시마는 그들을 챙기지 못한 일본의 안목을 한탄한다. 더불어 일본 뿐 아니라 한국도 같은 일을 겪을 것이라고 예언 아닌 예언을 한다.

시마의 예언이 들어 맞았는 지 모르겠지만, 요즘 우리는 시마가 우려한 일을 겪고 있다. 회사가 문을 닫거나 구조조정을 했거나, 아니면 정년 퇴직으로 직장을 떠난 사람들이 다시 중국 기업에 재취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들은 몸만 가는 게 아니다. 수십 년 갈고 닦은 기술과 경쟁 기법 등을 고스란히 안고 간다. 그 결과는 국가경쟁력의 저하로 나타난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이 120개 국가전략기술을 대상으로 시행한 2012년도 기술수준 평가에 따르면 95개 분야에 걸쳐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는 2010년 2.5년에서 1.9년으로 단축됐다. 특히 철강 분야는 더욱 심각해서, 지난달 말 열린 철강포럼 보고에 따르면 10년 내 한국 중국 일본 3국의 기술 격차가 완전히 사라질 전망이다.

최근 팬택이 경영 위기를 맞아 흔들리고 있다. 샐러리맨 신화였던 박병엽 부회장이 물러났고, 직원의 3분의 1이 6개월 무급 휴직에 들어갔다. 업계에서는 벌써부터 중국 기업의 인수ㆍ합병(M&A)을 통한 기술 유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굳이 M&A를 하지 않더라도 사람을 데려가는 방법으로 기술을 가져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팬택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국내 휴대폰 업계가 당장 세계 시장에서 타격을 받을 것이고, 수 많은 협력업체들도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즉 산업 생태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생태계의 연결 고리는 결국 사람이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산업 생태계를 강화하려면 어떤 이유로든 직장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에게 남은 생을 보장해주지는 못해도 최소한 이 땅에서 다시 해볼 수 있다는 희망은 주어야 한다.

올해 2월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밀려난 모토로라코리아가 국내 진출 45년 만에 문을 닫았다.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리플레이스먼트센터 개설이었다. 이 센터는 외부 전문업체에 의뢰해 직원들의 재취업을 돕는 곳이다. 단순히 일자리만 알아봐 주는 것이 아니라 나이와 직급, 경력에 맞게 구체적 도움을 준다. 어떤 임원에게는 창업 컨설팅을, 심리적 공황을 겪은 여직원에게는 6개월 이상 힐링을 통해 마음을 어루만져 줬다.

우리 기업들과 정부는 어떤 지 한 번 돌아보자. 오랜 시간 고단한 노동 끝에 일터를 떠나는 사람들 또한 외면하지 말고 잘 보듬는 것이 곧 국가경쟁력과 산업 생태계를 보전하는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연진 산업부 차장대우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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