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젓 냄새가 코를 찌르던 캄캄한 막장에 문화의 빛이 스며들었다. 100년 된 폐광이 '동굴 테마파크'로 탈바꿈하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기 광명시 가학광산 동굴이 주인공이다.
29일 오후 동굴 속으로 한 발 내딛자 얼음장 같이 차가운 바람이 온몸에 퍼졌다. 늦더위도 물러간 뒤라 등골에 서늘함마저 느껴졌다. 가학광산동굴은 문화유산해설사와 함께 관람할 수 있다. 동굴 내부는 연중 섭씨 12도가 유지된다. 동굴 입구에서 수십m 정도 일직선으로 들어가자 갱도가 좁아지는가 싶더니 길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갱도는 좌우로 갈라지기도 하고 비스듬한 경사를 따라 연결되면서 미로처럼 복잡해졌다. 해설사 없이 관람하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일 듯했다.
발 밑으로 까마득히 이어진 지하 갱도는 보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 발 밑에서 펼쳐지자 관람객들은 쉽사리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니 동공(동굴 내 광장 같은 넓은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동굴 벽에 걸린 300인치 스크린에는 애니메이션이 상영 중이었다. '동굴 영화관'이다. 작은 돌들을 계단식으로 쌓아 여러 층 평지를 만든 후 의자를 설치한 객석에는 가족 단위 나들이 객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에 빠져 있었다. 동굴 영화관 벽은 거칠게 깎여나간 바위 결이 생생하게 드러나 보였다.
동굴 속으로 들어갈수록 아름다운 화음이 퍼져 나왔다. 이곳은 '동굴 예술의 전당'으로 매 주말마다 국악부터 발레, 클래식 음악까지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이날은 아카펠라 그룹의 공연이 펼쳐졌다. 절묘한 목소리 화음이 동굴 가득 울려 퍼지자 관람객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리듬까지 어우러지니 신비로움이 물씬 풍겼다. 동굴 예술의 전당은 동굴 입구에서 270m 들어간 곳에 자리잡고 있다. 100여㎡의 무대와 310㎡ 크기의 광장에는 350석의 객석이 마련돼 있다. 이곳은 공연뿐만 아니라 패션쇼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1912년 채굴을 시작한 가학광산은 1972년 폐광될 때까지 60년 동안 금 은 동 아연 등을 채굴한 수도권 최대 금속 광산이었다. 회사가 문을 닫은 이후 방치되던 가학광산은 소래포구 새우젓을 숙성시키는 저장고로 쓰였다.
광명시는 2011년 초 이 광산을 43억원에 사들여 문화공간으로 변모시켰다. 갱도 길이는 7.8㎞, 깊이 275m 규모로 이 중 1㎞ 정도가 개방돼 있다. 광명시가 지난 4월 안전공사 등을 마무리하고 재개방 한 이후 9월말까지 6개월 동안 34만여명의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았다. 최근에는 중국 국영 방송국인 CCTV-2에 한국의 이색 관광지로도 소개되면서 중국 관광객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양기대(51) 광명시장은 "폐광산이 여름에는 피서장소로, 평시에는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면서 "광산을 미술관으로 바꾼 독일 에센 촐페라인 탄광산업단지에 버금가는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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