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가 자신이 이끄는 자유국민당 소속 장관들의 사퇴를 지시하면서 연립정부가 붕괴 위기에 처하자 엔리코 레타 총리가 의회에 내각 신임투표안을 제출하겠다며 정면 돌파에 나섰다. 2일(현지시간) 열릴 투표에서 재신임을 받은 뒤 새로운 연정을 꾸려 정국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가결 여부가 불투명한 가운데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 정국이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레타는 지난달 29일 조르지오 나폴리타노 대통령과 긴급 면담을 가진 뒤 "복잡한 상황을 고려해 가급적 빨리 의회의 판단을 받기로 했고, 내각이 신임을 얻지 못하면 (총리직 사퇴)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레타는 "정부의 새로운 출발뿐 아니라 우리의 정책을 계속 추진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부가가치세 인상, 베를루스코니에 대한 상원의원직 박탈 문제를 놓고 자유국민당에 양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레타의 내각 재신임 요청은 연정 파트너이면서도 연정을 흔들고 있는 정적 베를루스코니를 무력화하려는 정치적 승부수로 평가된다. 레타가 속한 중도좌파 민주당은 2월 총선에서 승리하고도 단독정부 구성에 필요한 상ㆍ하원 과반의석을 얻지 못해 중도우파 자유국민당, 마리오 몬티 전 총리의 시민선택당과 좌우동거형 연정을 구성했다. 장관직 배분 등 진통 끝에 4월 말 내각이 출범했지만, 베를루스코니가 8월 대법원에서 탈세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상원이 그에 대한 제명을 추진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베를루스코니의 구명에 나선 자유민주당이 25일 상원의원 총사퇴를 언급한 데 이어 28일 부가가치세 인상 반대를 명분으로 장관 총사퇴를 선언하자 레타는 "베를루스코니가 개인적 문제를 감추려 국민에게 엄청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민주당의 상원 의석이 과반에 못미치고 제3당인 오성운동 또한 조기총선을 요구하고 있어 레타 내각이 재신임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런 가운데 자유국민당 소속 장관 5명 중 3명 이상이 장관직 사퇴 지시에 반발, 내각 신임안에 소신투표를 하겠다고 밝히면서 베를루스코니를 당혹케 하고 있다. 29일 소속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가급적 빨리 총선을 해야 하며 우리는 이길 것"이라며 반대표 행사를 독려하던 베를루스코니는 장관들의 잇따른 반발에 "부가가치세 인상 철회, 연내 재산세 폐지 요구가 관철되면 연정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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