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 명물 된 '루드허호프'철거 예정 교회건물 독특해 보존 결심… 내부 놔두고 내벽 따라 주택 16채 지어 가운데 공간은 주민 교류하는 장소로창의·실용의 네덜란드 건축철거와 보존 둘 다 완전한 정답은 못돼… 재사용 건축으로 폐자재 줄이고 역사와 호흡… 지속 가능성의 추구는 선택 아닌 의무
건축 영역에서 네덜란드는 국가라기보다 하나의 브랜드다. 렘 콜하스, MVRDV, 벤 판 베르켈 등이 90년대 이후 세계 건축 트렌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네덜란드 건축'이란 창의와 실용의 다른 이름이 됐다.
8월 14일부터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갤러리에서 열린 네덜란드 건축ㆍ디자인전은 네덜란드라는 단어만으로도 전공생들과 업계 관계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최근 4년간 네덜란드에서 만들어진 건물과 디자인을 조명해 몇 가지 키워드를 뽑아낸 이번 전시에서 유독 눈길을 끈 것은 '재사용(reuse)'이란 개념이다. 재사용 건축이란 용도 폐기된 건물이나 구역을 철거하지 않고 일부만 헐거나 증축해서 완전히 새로운 용도로 바꾸는 것을 뜻한다.
대표적인 건물은 2005년 시골 마을 리텐보르다에 지어진 집합 주거 단지 루드허호프다. 철거 예정인 교회를 거의 그대로 보존하면서 16채의 집합 주택으로 변신시킨 이 건물은 네덜란드건축협회(NAi) 20주년 기념 연감 10대 작품에 선정됐다. 건축을 맡은 아틀리에 프로의 공동 대표 한스 반 빅이 지난달 말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재사용 대신 '새로운 사용(new use)'이란 말이 더 적합하다고 말한다. 기존 건물을 재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용도가 생겨나고 건물 환경에도 새로운 쓰임새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루드허호프가 탄생한 배경은 무엇인가.
"교회를 지은 이가 내 친구다. 평소 교회 건물에 대해 많이 얘기했는데 그가 갑자기 죽고 나서야 교회의 실물을 보러 갈 수 있었다. 철거 예정이라던 교회 건물은 너무나 독특했다. 유리 대좌 위에 직사각형의 나무 상자를 올린 형태였는데, 보자마자 건물을 보존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엔 단독 주택으로 바꾸려고 했으나 그러면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는 교회의 기능이 사라지기 때문에 포기했다. 결국 건물 내부는 놔두고 건물과 담장 사이의 공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그럼 교회 건물은 완전히 보존된 것인가.
"지붕을 들어낸 것 외에 모두가 그대로다. 건물의 4개 면 중 길다란 2개 면을 따라 바깥으로 8채씩, 모두 16채의 주택을 지었다. 교회 내벽이 주택 외벽으로 바뀐 것이다. 원래 교회였던 가운데 공간은 주민들이 교류하는 장소로 조성했다."
-재사용 건축을 두고 '네덜란드적'이라고 말한다. 네덜란드에 이런 식의 건축 형태가 흔한가.
"흔하지는 않지만 특징적인 부분인 건 맞다. 몇 년 전 한 국립박물관이 너무 좁아 새로 지어야 했는데, 전시장과 그 옆에 있는 사무동을 층마다 다리로 연결해 통로를 전시장으로 활용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네덜란드에도 전면 철거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도 헤이그의 25년 된 국립무용극장의 철거를 놓고 찬반 논란이 한창이다. 나도 반대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완전히 철거하지 않고도 건물들 간의 유기성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한다든가 지역을 개발할 때 도로는 남기는 등 다양한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
-한국에선 철거와 보존을 둘러싼 논쟁이 자주 일어난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과거를 대하는 태도는 어떤 것인가.
"옛 건물을 보존해 좋은 경우도 많지만 보존만이 정답은 아니다. 재사용 건축의 목적은 보존이 아닌 새로운 용도의 창출이다. 아무리 유명하고 오래된 건물도 새로운 기능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루드허호프의 경우 교회를 보존함으로써 아름다운 건물을 살리고 불필요한 폐자재를 줄이고 주민들에게 역사와 호흡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새로운 용도를 위해 지붕을 없앴다는 것이다. 완전한 철거를 피하기 위해 때론 부분적인 파손도 필요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재사용 건축 같은 발상의 전환은 무엇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네덜란드 디자인의 비결을 찾기 위해 흔히 네덜란드의 역사나 국민성을 거론하는데 피상적 분석은 아닌가.
"네덜란드 건축이나 디자인을 특정한 양식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디테일을 중시하거나 지속 가능성에 관심을 둔다는 공통점은 있다. 네덜란드 땅은 해수면보다 낮아 바다의 범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을 때마다 이산화탄소가 엄청나게 발생하고 자재가 많이 버려진다. 네덜란드인에게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일은 선택이 아닌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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