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대 현안은 원자력발전소 문제다. 방사성물질의 해양유출은 백 년 아니 천 년 걸려야 해결될지 모르는 인류 최초의 사건이다. 일본 출판계는 이런 문제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까를 고민하고 정의ㆍ윤리란 무엇인지 생각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답해야 한다."
창사 100주년을 맞은 일본 대표출판사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의 오카모토 아쓰시(岡本厚ㆍ59) 사장은 30일 "정말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제대로 된 책을 내는 것이 이와나미가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남을 방법"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오카모토 사장은 1일 경기 파주출판도시에서 '아시아, 경계를 넘어서-책으로 소통하는 아시아' 국제출판포럼 참가를 위해 이날 서울에 도착해 기자들과 만났다.
오카모토 사장은 와세다대 졸업 후 이와나미쇼텐에 입사해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16년간 이 출판사를 대표하는 진보 시사월간지 편집장을 맡았다. 한일관계, 남북한문제를 비롯, 일본 교육, 양극화 문제에 큰 관심을 보여왔고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지식인 모임 '9조의 모임' 아래 조직된 '언론 9조의 모임' 발기인이기도 하다. 2010년에는 "병합조약 원천 무효"라는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 발표를 도왔고, 그 해 신년호를 '한일병합 100주년' 특집으로 꾸리기도 했다.
그 때문에 그에게는 지금 얼어붙은 한일관계가 누구보다 착잡하다. "인적교류가 이어지고 있어 반드시 극복될 것"이라면서도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양국관계가 이렇게 된 이유를 물었다. "직접적인 계기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관련 발언이지만 더 큰 이유는 일본 내 국민감정 변화다. 배경에 3ㆍ11 동일본 대지진이 있다. 큰 재난에 맞닥뜨리자 일본 내에 약한 모습 보이면 안 된다, 뭉쳐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때 한국ㆍ중국과 영토문제가 불거지자 피해자 감정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 감정은 공격적으로 바뀐다."
오카모토 사장은 "일본이 이렇게 된 데는 정부뿐만 아니라 언론 책임도 크다"며 "신문 출판 등 언론이 일본의 문제를 반성하고 그것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언론도 "갈등을 부추기려 하지 말고 동아시아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할지 한국 정부나 시민들이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나미쇼텐의 저력을 그는 "고전이나 학술저서를 문고 등의 형태로 싼 값에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지식과 미를 특권계급의 독점에서 빼앗아 돌려주는 것이 언제나 진취적인 민중의 절실한 요구다.'1913년 헌책방을 열고 이듬해 출판을 시작한 창업자 이와나미 시게오가 27년 이와나미문고 창간에 붙인 이 말이 바로 이와나미쇼텐의 출판정신이다. 그래서 이 출판사를 지탱하는 책은 바로 문학, 철학을 비롯해 수학, 물리학 등 자연과학책까지 아우르는 고전들이다. 오카모토 사장은 "신간으로는 안 팔려도 5년 10년이 지나면서 30만부, 50만부 팔리는 책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창사 100주년을 기념해 올해 일본 역사(22권), 일본의 사상(8권), 아리스토텔레스 전집(20여권)을 낼 계획이다. 10년 걸쳐 100명의 전문가가 작업해 3만8,000명을 등재한 (2권 세트)도 선보인다. 오카모토 사장은 "이런 책을 누가 읽을까 싶겠지만 일본의 지식 기반을 조성하는 것은 출판계의 의무"라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사진=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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